김세동 논설위원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경찰에 체포됐다가 법원의 체포적부심에서 풀려난 ‘사건’을 보면서 세 가지 측면에서 놀랐다. 정권의 눈치만 살핀 듯한 경찰의 무리수와 무감각, 말도 안 되는 체포영장을 받아준 검찰과 법원의 무소신, 여권이 법원을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는 상황에서 체포 사유가 없다며 풀어준 판사의 용기 등.
‘검찰폐지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현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확정판결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게 하는 ‘재판소원제’ 도입 등 사법부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작업을 추진 중이고 조희대 대법원장과 비상계엄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판사에 대한 무차별 사퇴 공세를 벌이는 와중에 판사가 ‘이진숙’을 풀어줄 배짱은 없을 줄 알았다. 사법권 독립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당연한 법적 조치가 감동이 될 정도로 지금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 법치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
여당의 방송통신위원회 폐지 및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신설로 자동 면직된 지 하루 만에 경찰이 이 전 위원장을 체포한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다. 지난해 9월 직무 정지된 상태에서 유튜브 등에 출연해 “민주당이나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이라고 했다고 더불어민주당이 고발했는데, 이게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자체가 황당하다. 직무집행에서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할 시간도 안 되는 방통위원장 취임 이틀 만에 민주당에 의해 탄핵소추 당한 뒤였던 만큼 그 정도 발언은 할 수 있지 않나. 앞으론 민주당을 비판하려면 경찰에 체포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체포되는 사례가 거의 없는데, 민주당을 비난했다는 혐의로 체포한 것은 경찰의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에 따른 과잉”(박범계 민주당 의원)이다. 하지만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러니 국민들이 사법 개혁을 부르짖는 것”이라고 외려 법원을 비난했다. 사법부 침탈과 삼권분립 훼손을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언어도단이다. ‘이진숙 사태’는 1년 뒤 검찰이 없어지고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는 경찰의 무소불위가 가져올 어두운 미래다. 여기에 사법부 훼손·재편까지 얹혀진다면…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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