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경 산업부 차장
요즘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하수구 탄광촌’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서울 이외에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앞글자를 딴 약어다. 하수구는 하남·수지·구(舊)성남, 탄광촌은 동탄·광명·평촌을 가리킨다. 멸칭으로도 자주 쓰인다. 서울이나 ‘천당교(과천·분당·판교)’에 진입하지 못한 거주민을 조롱할 때 악용된다. SNS에선 매년 ‘부동산 계급도’가 갱신된다. 아파트 브랜드나 평균 매매가를 피라미드 형태로 줄 세운 것이다. 부동산시장에선 ‘급지’가 지역별 서열을 가린다. 서울 25개 구를 상급지, 중급지, 하급지로 나누다 못해 같은 동네조차 계급도로 세분화한다.
아파트에 따른 특권의식이 논란을 일으키는 일도 잦다. 최근엔 서울 강동구 고덕아르테온이 단지를 관통하는 공공보행로를 막기로 결정하면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곳은 재건축 당시 외부개방형 보행로 조성을 전제로 인허가를 받았다. 다른 단지 주민들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집값 앞에선 사회적 약자도 봐주지 않는다. 지난 2018년부터 추진된 청년임대주택은 인가가 난 모든 지역에서 반대 민원이 접수됐다. 주민들이 나열한 피해 맨 윗줄에는 ‘아파트값 폭락’이 있었다. ‘부모 찬스’가 없는 청년을 위한 집이었지만, 주민들은 ‘5평형 빈민 아파트’라고 비하했다. 임대주택 거주자들을 ‘○○거지’라며 차별하는 일도 숱했다. 서울 성동구 한 특수학교는 설립 추진 7년 만에 겨우 문을 열게 됐다. 주민들이 “성동구가 명품 동네인 만큼 명품 학교를 지어야 한다”면서 반발했기 때문이다.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아파트. 이젠 단순한 재화가 아니다. 집은 순수한 의미를 잃었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계층을 나누고, 신분을 입증하는 기준이다. 전용면적이 같아도 동네가 다르면 값은 달라진다. 같은 단지라고 해도 층과 면적이 다르면 다른 아파트다. 직업과 자산 규모를 따져본 후 입주 여부를 정하겠다는 아파트도 등장했다. 거액을 쏟아부은 아파트값을 올릴 수 있다면 공존 등 보편적인 가치도 쉽게 저버린다.
‘아파트 공화국’이 되면서 공동체 가치는 무너지고 있다. 큰 폐해다. 취재차 들렀던 스웨덴 나카(Nacka)에 있던 한 푀르스콜라(취학 전 유아학교). 그곳에선 장애아와 비장애아들이 같이 교육받고 있었다. 교장은 매 학기 초 학부모들에게 다운증후군, 자폐증 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함께 공부한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학부모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교장의 설명은 이랬다. “장애아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기다려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걸 깨쳐요.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 돕고 이해하게 되죠.”
아파트란 공간도 공동체가 있기에 존재한다. 보행로를 폐쇄한 단지가 지어진 건 이웃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지 주민들도 누군가의 사유지를 밟고 다닌다. 집값을 위해 요양시설을 기피했던 주민들도 예외 없이 노인이 된다. 부동산 계급화는 천민자본주의다. 이미 우리 아이들에겐 사는 곳에 따라 계급의식이 심어지고 있다. 국민성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부끄러울 일이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