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우빈
배우 김우빈

‘알라딘’에 등장하는 램프의 요정 지니는 역대 월트디즈니 시리즈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인기가 높은 캐릭터 중 하나다. 중동의 영적 존재를 모티브 삼았으며, 지난 1992년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에서 현재 널리 알려진 개념의 지니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숱한 영화와 뮤지컬 등에서 지니는 다양하게 변주됐다.

지난 추석 연휴 공개된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는 지니를 한국적으로 각색한 첫 사례다. 게다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기 때문에 전 세계 팬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무거운 자리다. 그 중책을 짊어진 배우는 김우빈이었다.

앞서 ‘더 글로리’를 비롯해 ‘도깨비’·‘시크릿가든’·‘태양의 후예’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로맨틱 코미디 복귀작으로 더 각광을 받은 이 작품에서, 김우빈은 ‘태양의 후예’ 속 대사(“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처럼 미스터리하고 매력적인 판타지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글로벌 스트리밍 순위 차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글로벌 2위까지 기록했다. 아시아 외에도 중동, 유럽 등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는 ‘김은숙 작사, 김우빈 작곡’의 화합이 빚은 결과다.

김 작가는 한국에서 판타지 스토리를 가장 잘 푸는 크리에이터다. 앞서 도깨비와 저승사자(도깨비), 몸이 바뀐 남녀(시크릿가든), 재벌 2세(파리의 연인), 천하무적 군인(태양의 후예)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그리고 이번에는 램프의 정령을 구축하며 김우빈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고, 김우빈은 그 손을 기꺼이 잡았다. 과거 또 다른 집필작 ‘신사의 품격’·‘상속자들’을 통해 김우빈의 가능성을 엿보고 그를 성장시킨 김 작가의 눈은 정확했고, 김우빈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캐릭터로 매만졌다.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

1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김우빈은 “저를 오랜 시간 봐온 작가님은 저를 잘 아신다”면서 “그래서 ‘김우빈이라면 이렇게 연기할 거다’라고 상상하면서 써주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맞춤형 대본 같았다”고 그 공을 김 작가에게 돌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지니는 푸른 몸을 가진 거인이다. 김우빈은 188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여주인공 기가영 역을 맡은 배우 수지와 설레는 키 차이를 선보이며 소위 ‘문짝남’(타고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든든히 기댈 수 있는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의 매력을 뽐냈다. 무려 1000년 가까이 길러온 장발과 총천연색이 버무려진 의상까지 무리없이 소화했다. 모델 출신 배우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대목이다.

더 중요한 건 연기력이다. 인간과 정령의 중간 단계에 놓인 캐릭터를 오가기 위해 다양한 말투를 사용하고, 폭넓은 감정선을 품어야 한다. 게다가 ‘다 이루어질지니’는 복합 장르 콘텐츠다. 로맨틱 코미디의 표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그를 벌하려는 정령과 신, 또 용서와 포용을 더 중시하는 존재의 가르침과 깨달음 등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히 얽혀 있다.

지니는 김 작가의 ‘파리의 연인’·‘시크릿가든’·‘더 글로리’ 속 캐릭터를 패러디하면서 웃음을 주다가도, 재물에 눈이 먼 인간들의 소원을 비웃고 분노에 사무쳐 엄중하게 벌을 내린다. 희극과 비극의 감정을 순식간에 오가는 리듬감이 탁월하다.

김우빈은 “김 작가님의 유머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작가님의 작품엔 항상 메시지가 있다”면서 “대본이 한부 한부 나올 때마다 ‘이렇게 깊고 큰 이야기였구나’ 생각하게 됐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를 수만은 없는 깊고 따뜻하고 아픈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제가 참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극 중 지니는 램프의 주인이 된 인간의 소원 3가지를 들어준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소원 3가지로 다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한 등장인물은 3번째 소원으로 “제가 이미 2가지 소원을 빌었다는 것을 정령님이 잊게 해주세요”라고 빈다. 무한하게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설정이었다.

그렇다면 ‘인간 김우빈’에게 3가지 소원을 빌 권리를 준다면 그는 어떤 소원을 빌까? 이 작품을 찍는 내내 이같은 고민을 해본 김우빈은 스스럼없이 답했다.

“늘 똑같이 말하는데, 첫 번째는 저를 포함해서 제가 아는 모든 사람이 100살 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그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돈을 가지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아까워서 아직 얘기 못했는데…, 조금만 더 아껴두고 싶어요.(웃음)”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

그동안 김우빈이 출연한 작품을 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그를 기용했던 크리에이터들이 다시 김우빈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김 작가와는 이미 3편을 합작했다. 최동훈 감독은 당초 영화 ‘도청’을 제안했으나 제작이 무산된 후 ‘외계+인’ 시리즈로 김우빈과 다시 만났다. 조의석은 감독은 영화 ‘마스터’와 넷플릭스 ‘택배기사’를 연출하며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는 김우빈이 ‘좋은 배우’이자 ‘좋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촬영장에서 배우는 두 얼굴을 띤다. 카메라 앞 배역과 카메라 뒤 본래 모습이다. 배역을 잘 소화해 좋은 결과를 내더라도 인간적인 호흡이 좋지 못하면 다음 행보를 함께 도모하기 어렵다. 반대로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작품의 성과가 미미하면 다시 손잡기 어렵다. 투자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우빈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것을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앞서 3가지 소원을 다 말하지 못한 김우빈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배우로서는 어떤 소원을 빌고 싶나?”

그는 주저없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 기준이 많죠. 저는 선배님들께 잘 배워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제가 대본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약 50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친 후 큰 키의 김우빈은 허리를 깊이 숙여 다시 한번 인사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 보탰다. “저 사진 잘 찍는다는 소문 들으셨나요? 저와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분들과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날 김우빈은 ‘다 이루어질지니’의 주연 배우로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말했다.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고 박수 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어린 나이에 큰 병을 앓고, 또 이를 극복한 김우빈이 너무 일찍 알아버린 삶의 진리다. 그리고 ‘다 이루어질지니’는 그 진리를 주요 메시지로 품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김우빈이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인 이유다.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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