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올래 - (8) 보성 강골마을 ‘소촌고택’

 

역사 천년된 광주 이씨 집성촌

옛 자개장 등 보존해 숙소 재편

 

“느리고 불편해도 행복한 고립”

11월까지 주말 예약 모두 마감

향토음식 ‘꼰밥’ · 마을 투어도

지난달 28일 오후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마을에 위치한 한옥 소촌고택에서 숙박객들이 녹차를 마시고 있다. 박윤슬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마을에 위치한 한옥 소촌고택에서 숙박객들이 녹차를 마시고 있다. 박윤슬 기자

보성=조율 기자

풀잎에 이슬이 맺힌 새벽 6시. 휴대폰 알람 소리가 아닌 새의 지저귐과 닭의 우렁찬 울음소리로 눈을 뜬다. 방문을 열면 회색 빌딩이 아닌 파란 잔디밭과 하늘이 반겨준다. 매일 잠을 쫓기 위해 마시던 커피 대신 마을 할머니들이 준비해준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몸을 깨운다. 전남 보성 강골마을에 위치한 한옥 ‘소촌고택’에서 맞는 아침이다.

지난달 28일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골목을 10분가량 지나 강골마을에 도착했다.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좁은 길을 더 들어가다 보면 방문객은 오늘 하루를 보내게 될 ‘소촌고택’을 마주하게 된다. 출입구 밖에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소촌고택은 뒤로는 대나무 숲까지 둘러져 있어 아늑하면서도 독립적인 느낌을 준다. 그때부터 혼자만의 또는 사랑하는 가족·친구와의 오롯한 ‘불편한 하루’가 시작된다.

강골마을은 약 950년 전 양천 허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400년 전부터는 광주 이씨가 정착해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소촌고택은 100여 년 전 지어진 한옥으로 최근까지 한 가족이 대를 이어오며 살다 최근 숙박업소로 재편됐다. 하지만 구둣솔, 빗자루, 낡은 자개장, 자물쇠 대신 문고리와 고리 사이 꽂힌 숟가락 등 그들이 살던 삶의 정취와 방식은 그대로 남아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물건들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숙박객들의 재미다.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에요. 일반 숙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정취와 매력이 느껴져요.” 이날 오후 소촌고택에 입실해 숙소를 둘러본 용수진(27) 씨는 옛 거주자가 남긴 물건들과 이전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을 들춰보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소촌고택은 일반 펜션이나 호텔과 달리 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근처 흔한 편의점도, 식당도 없다. 낡은 가구와 바닥에 펴고 자야 하는 이부자리가 어색하지만 많은 사람은 기꺼이 이 ‘불편한 하룻밤’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투숙객 모집을 시작한 소촌고택은 올해 11월까지 주말 예약이 모두 마감된 상태다. 방 3개, 거실 2개, 화장실 2개, 주방으로 이뤄진 소촌고택은 하루 한 단위 가족들만 받고 있어 ‘행복한 고립’이 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고택을 운영하고 있는 보성 관광 프로그램 ‘쉬면뭐하니’ 소속 황숙향 활동가는 “사람들이 단순한 여행을 넘어 그 지역의 삶에 녹아드는 느낌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도시에서 빠르고 편하게, 하지만 바쁘고 여유 없게 살아오시다가 이곳에 들어오시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씀을 많이 해준다”고 말했다.

소촌고택에서 한 숙박객이 이부자리를 편 뒤 고택마루에서 휴식을 즐기고, 저녁엔 고택 앞 잔디밭에서 동행자와 함께 ‘불멍’을 즐기고 있다. 박윤슬 기자
소촌고택에서 한 숙박객이 이부자리를 편 뒤 고택마루에서 휴식을 즐기고, 저녁엔 고택 앞 잔디밭에서 동행자와 함께 ‘불멍’을 즐기고 있다. 박윤슬 기자

고택에서의 하루가 마냥 불편한 것은 아니다. 도시 숙박객들이 가장 걱정하는 화장실과 부엌은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으로 바꿔 편히 사용할 수 있다. 수건과 드라이기 등 어메니티도 구비되어 있고 온수도 불편하지 않게 나온다. 겨울에는 아궁이를 통해 마루를 데울 수 있고, 보일러 난방을 돌리는 것도 가능해 추위 걱정도 덜 수 있다.

체크인 후 숙소에서 여유를 즐기다 보면 저녁식사 전 남부지방 전통 음식인 ‘꼰밥’ 체험을 할 수 있다. ‘꼰밥’이란 달걀 껍데기 속에 불린 쌀과 물을 넣은 뒤 이를 구워 만든 밥으로, ‘달걀온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골마을 주민 할아버지의 설명대로 빈 계란 안에 불린 쌀과 녹차 잎 등을 넣은 뒤 15분 정도 기다리면 꼰밥이 완성된다. 체험객들은 계란 껍데기에 사인펜으로 자신의 소원과 바람을 적어 넣으며 오늘 하루를 기념했다.

어둠이 짙어지고 밤이 찾아오면 고택 앞 잔디밭에서 이뤄지는 ‘캠프파이어’가 소촌고택 하룻밤의 정점이다. 나만의 공간인 한옥 앞 잔디밭 안 텐트에서 ‘불멍’을 하며 고기를 구워 먹고, 타오르는 장작 소리를 들으며 가족·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힐링’으로 마무리되는 하루를 경험할 수 있다. 용 씨는 “요즘 2030세대들은 템플스테이를 가고 싶다, ‘촌캉스’를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해요. 사회로부터 떨어져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휴식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나만의 한옥에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계획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했다.

고택을 둘러싼 강골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다. 이정민 강골마을 운영위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1시간 정도 마을 투어를 하다 보면 선조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간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고택에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중요 민속문화재 162호이자 유명 드라마인 ‘옷소매 붉은 끝동’ 촬영지인 열화정이 있다. 이외에도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선다원 녹차밭에서 전통과자만들기 체험을 하거나 전남 무형문화재 제37호 이학수 옹기장의 옹기 제작과정을 둘러볼 수 있는 ‘미력옹기’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연관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고영아 쉬면뭐하니 활동가는 “어른들은 옛 정취를 느끼며 향수에 젖어들 수 있고, 청년들은 휴식과 여유를 느낄 수 있으며 아이들은 색다른 경험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보성 강골마을”이라며 “불편함 속의 여유, 조용함 속의 따뜻함을 누리고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율 기자
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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