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정치부 차장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친여 성향의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한 질의 마지막에 ‘합성 사진’을 꺼내 들었다. 조 대법원장의 얼굴을 일본 사무라이에 가져다 붙인 조잡한 사진 아래에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대 대법원장을 조롱하는 ‘별명’까지 적었다. 또, 서산 부석사 불상을 일본에 반환하라고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친일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판결은 조 대법원장이 임명되기 전인 2023년 10월에 선고됐다. 이른바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을 제기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도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윤석열을 만났나’ ‘한덕수를 만났나’ 등을 대법원장에게 묻기만 했다. 다른 여당 의원들 역시 호통치기에 바빴다. “법사위에 (지지층에 보여줄) 쇼츠 찍으러 왔나”라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힐난이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날 모습은 지난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여권이 보여온 행태의 연장선에 있다. 무죄 확정이라는 기대가 무너지자 민주당은 분노와 저주를 퍼붓고 억지 주장을 이어왔다. 회동설만 하더라도 서 의원이 처음 꺼냈을 때도,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 부승찬 의원이 재차 언급했을 때도 구체성은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회동을 기정사실화하며 조 대법원장을 ‘내란 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노골적인 망신주기에 또다시 도마에 오른 건 면책특권이다. 의원들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허위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노골적으로 하지 못했을 거라는 지적이다. 면책특권이 정쟁용으로 전락한 사례는 많다. 지난 정부에서 제기됐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대표적이다. 명백한 허위 사실이었음에도 김의겸 전 의원은 형사처벌을 피했다. 이번에는 면책특권을 악용한 공격 대상이 정치권 밖의 사법부가 됐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데 동원됐다. 이쯤 되면 여권이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면책특권이 사라지는 게 반가운 건 권력이기 때문이다.

면책특권은 의회 내 언론 자유 등을 규정한 영국의 권리장전(1689년)이 기원으로, 미국 헌법에서 명문화됐다. 이후 권력 견제·비판을 보장할 수 있도록 많은 나라에서 채택했다. 한국의 경우 면책특권이 없었다면 노태우 비자금 수사를 못 했을 수 있다. 1995년 박계동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구체적인 계좌 자료를 근거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모아 은닉했다고 폭로했고,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소수 야당 초선 의원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면책특권이 있다고 평가된다. 권력을 쥔 여당 의원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 부작용을 양산하는 건 비판받아야 하고 개선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다수결이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국정과 의회를 운영하는 여권을 견제하려면 소수를 보호하는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이 면책특권을 없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면책특권은 잘못이 없다.

조성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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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기자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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