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李정부 檢·사법개혁 몰이 과정
文정부 적폐청산 다시 보는 듯
강경 득세 → 민심 이반 → 실패
李-鄭 자기정치, 역할극 선넘어
명분·공감대 잃으면 탈선 위험
폭력적 강제로 국민에 고통만
2020년 12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최고점에 달할 때였다. 문 대통령은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에 걱정을 끼치고 있어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촛불혁명을 거쳐 성장한 한국 민주주의가 마지막 숙제를 푸는 단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 입각해 권력기관 개혁 입법이 반드시 통과돼 공수처가 출범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사흘 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공수처장 추천의 야당 거부권을 무력화한 공수처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다음 날 발표된 여론조사(12월 2주·이하 한국갤럽)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8%, 취임 후 최저치였다. 긍정 평가한 이유(자유 응답) 중에 ‘검찰 개혁’(10%)이 있었지만, 부정 평가층은 ‘법무부-검찰 갈등’(6%) ‘독단·편파적’(6%)을 지목했다. 민주당 지지율도 35%로 최고점보다 5%P 하락했다. ‘윤석열 찍어내기가 검찰 개혁인 것처럼 밀어붙이다 지지율이 무너진 것’이란 해석이 다수였으나, 강경론이 터져 나왔다. 정청래 의원도 거기 있었다. “검찰총장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 따른 지지층의 실망감 표출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지지층의 채찍”이라고 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당론으로 지속됐고, ‘조국 사태’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은 2022년 3·9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당시 친문 진영이 ‘변절자’로 내몬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분석이 권력의 속성 측면에서 명쾌했다. ‘권력은 선거에서 이룬 승리를 오만과 독선의 면죄부로 활용한다. 스스로 선한 권력임을 내세웠으나, 비판자들에 온갖 모멸적인 딱지를 붙이는 도덕적 폭력을 행사했다. ‘내로남불’의 화신으로 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범위와 정도에서 압도적이다.’(‘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역사는 단순히 반복되지 않지만, 데자뷔처럼 전개될 때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내란 종식’을 내걸고 벌이는 일들이 그러하다.
이번엔 ‘빛의 혁명’이라고 명명했다. 재판 중지로 권좌에 앉은 대통령이 국민주권을 앞세우고, 자의적 해석의 헌법정신을 강조하며 사법부와 검찰을 저격하는 장면들이 똑같다. 개혁 완장을 찬 듯한 정 의원이 이제는 여당 대표로 더 센 권력자가 된 게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다. 끝내 검찰청을 해체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지난달 처리했다. 때를 맞추듯 이 대통령 지지율(9월 4주)이 취임 후 최저치(55%)인 것도 겹친다. 긍정 평가 이유 중에 검찰 개혁을 언급한 응답은 1% 미만으로 미미했다. 부정 평가 이유 중엔 ‘독재·독단’(11%), ‘대법원장 사퇴 압박’(5%), ‘정치 보복’(4%) 등이 있었다. 지지층도 검찰·사법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보진 않는다는 얘기다. 당 노선을 좌지우지한다는 강성 당원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민주당 지지도 역시 최고치보다 10%P 떨어진 38%였다.
갤럽은 ‘여당 주도 사안들이 대통령 평가에도 반영된 듯하다’고 조율 없는 폭주를 지적했다. 원조 친명 김영진 의원은 “당 지도부와 (추미애) 법사위원장 등이 고민해야 한다”고 한 적도 있다. 개딸들이 정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벌인 게 일과성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정색하고 이 대통령의 뜻을 “시끄럽지 않게, 방법은 지혜로웠으면 좋겠다”는 말로 전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여전히 다른 길이다. “중도 외연 확장은 허상이다. 당원 지지가 올라야 한다”고 한다. 지난 13일엔 “개혁의 고속도로를 놓고 민생 경제가 쌩쌩 달릴 국감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첫날 풍경은 추 위원장이 판을 깐 조희대 대법원장 ‘집단 린치’였다.
정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할지 말지는 그가 선택할 일이고, 이 대통령의 견제도 정치의 한 과정이라 여기서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 걱정되는 것은, 개혁역(驛)을 향해 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탈선이다. 엔진은 다수의 공감대이고, 철로는 한 방향이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권력은 폭력적인 힘을 동원해 강제하려 한다. 국민이 고통받는다. 이미 굿 캅-배드 캅 역할극 수준을 넘어섰다.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 멀리는 노무현 정부 때 깨달았어야 할 실패의 길을 되밟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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