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무부가 14일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등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해 전격적 제재에 나섰다. 필리조선소는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한 곳으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의 핵심 거점이다. 중국은 이들 기업이 “미국의 무역법 제301조 조사에 협조해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해쳤다”며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가열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튀기 시작한 셈이다. 호주와 이탈리아도 미국 내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데 K-조선만 콕 집어 제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의도적 보복으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이번 제재의 실질적 타격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의 미 자회사들은 현지 수요에 대응하는 생산기지여서 중국과 거래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접 타격은 현대글로비스가 받고 있다. 미국은 14일부터 무역법 제301조를 발동해 중국 국적 선박에 특별 항만서비스 요금을 부과했고, 중국도 상응 조치를 취했다. 미국이 자동차 운반선의 경우 한국에서 건조된 선박까지 부과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현대글로비스는 연간 2000억 원가량의 추가 비용을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 통상 전쟁에서 한국은 더 이상 ‘관전자’가 아니라 양측으로부터 협공당하는 ‘당사자’ 신세가 됐다. 반도체와 희토류에 이어 K-조선·해운까지 희생양이 되고 있다. 마스가의 상징까지 보복의 표적이 될 정도다.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이 가열될수록 주력 산업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힘을 키우거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대미·대중 통상 채널을 적극 가동하고 피해 기업 보호를 위한 긴급 지원책이 시급하다. 통상·외교·안보가 맞물린 복합 위기에 맞서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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