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베토벤, 현악4중주 16번 Op.135

 

고뇌와 투쟁으로 점철된 인생

양육하던 조카와 끝없는 갈등

화해와 회복의 시간속에 작곡

우아하고 상냥한 리듬 인상적

“한 작곡가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현악 4중주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라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의 말처럼 현악 4중주는 한 작곡가의 음악적 본질과 세계관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음악 형식이다. 2대의 바이올린과 1대의 비올라, 그리고 1대의 첼로로 이뤄지는 현악 4중주는 실내악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으로 최소의 악기 편성으로 최대의 음악적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최소한의 구성안에서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적 실험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음악적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난청이라는 모진 운명 앞에 고뇌와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베토벤, 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작품은 장엄하고 거대한 교향곡이 아닌 속삭이듯 맑고 투명한 현악 4중주 16번 Op. 135였다.

54세가 되던 1824년 말년의 베토벤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맞았다. 자신의 역작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엄미사’도 매우 만족할 만한 작품으로 완성됐고 9번 교향곡 ‘합창’을 통해선 지난 30년간의 노력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이젠 느긋한 마음으로 대작들의 초연 준비로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니콜라이 갈리친 공작이 의뢰했던 현악 4중주에만 몰두하면 그만이었다.

베토벤은 빠른 속도로 작곡을 이어나가 그 이듬해인 1825년 1월 ‘현악 4중주 12번 Op. 127’을 완성했고 연이어 7월에는 ‘현악 4중주 15번 Op. 132’를, 11월에는 ‘현악 4중주 13번 Op. 130’을 내리 완성해 냈다. 만년의 베토벤은 바흐나 헨델조차도 구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밀하게 직조된 대위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각각의 작품들을 4악장, 3악장, 6악장의 각기 다른 구성으로 작곡하며 음악적 실험 또한 자유롭게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에게 평화로운 시기는 없었다. 5년 전 마침내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손에 넣은 베토벤이었지만 카를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카를은 직업군인이 되겠다 선언했지만 베토벤은 결사반대했다. 등록금을 내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사람을 붙여 조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였다. 1826년 8월, 삼촌 베토벤의 집착과 압박을 견딜 수 없었던 카를은 권총 두 자루에 총알을 장전한 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야 만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 사건의 충격으로 베토벤의 심신은 급격히 쇠락해져 갔다.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는 판사의 추궁에 “삼촌 베토벤의 학대 때문”이라고 카를이 단호히 대답했던 사실을 베토벤이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826년 9월 베토벤의 동생 요한은 베토벤과 카를을 크렘스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한다. 빈으로부터 80㎞ 떨어진, 볕 좋고 포도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화해와 회복의 시간 속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현악 4중주 16번 Op. 135’이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조카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던 베토벤이 쓴 작품은 슬픔이나 고뇌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작품은 매우 단순하고 상냥한 것으로 우아함과 정겨움, 유쾌함과 단아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치 모든 것에 안도하며 감사하는 한 인간의 순응적인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추천곡 들여다보기

작품은 전체 4악장으로 1악장 알레그로: 첼로의 무거운 서주가 흐른 뒤 밝고 빠른 악장이 전개된다. 상냥한 악상들이 유쾌하고 장난스럽게 펼쳐진다. 2악장 비바체: 베일 듯 날카로운 리듬이 빠르고 현란하게 연주되는 악장으로 스케르초가 연상되는 악장이다. 3악장 렌토 아사이 칸탄테 에 트란퀼로: 2악장과 대비되는 느리고 조용한 사색적인 악장이다. 4악장 알레그로 그라베: 비올라와 첼로가 주제를 연주하면 바이올린은 이에 온화하게 화답한다. 두 그룹은 악상을 주고받으며 순수한 기쁨으로 경쾌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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