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창수의 Deep Read - 다당화하는 일본 정치
공명당 이탈로 일본의 ‘99년 체제’ 붕괴… ‘自公연립’ 시대 막 내리고 다당화 정국으로
여소야대 이어지면 일본 정권의 안정 유지 힘들어… 한·일 윈-윈 협력관계 유지 과제
최근 일본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에서 이탈을 선언했다. ‘99년 체제’로 불리는 ‘자공(自公) 연립’ 체제는 이제 역사적 종언을 맞이하고, 일본 정치의 다당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누가 일본 총리가 되더라도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한·일관계도 안정성을 기하기 어렵게 됐다.
◇99년 체제의 붕괴
1955년 결성된 자민당과 사회당이 대립했던 체제를 ‘55년 체제’라고 부른다면, ‘99년 체제’는 지난 26년간 자민당과 공명당이 맺어온 연립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이번 공명당의 연립정권 이탈은 단순한 연립정권을 둘러싼 정당 간의 갈등이 아니라, 99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켰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99년 체제’는 자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안전장치였다. 1998년 당시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 획득에 실패했다. 이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1999년 공명당과의 연립정권을 실현했고, 이후 26년간 이 체제를 유지해 왔다. 자민-공명당의 선거 협력은 야당과의 접전 선거구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명당은 각료직을 확보하고, 복지·교육·소비세 감세 등에서 정책 균형추의 역할을 한 것에 만족했다. 이를 통해 양당의 윈-윈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자공 연립의 원점이었던 ‘선거와 정책’에서의 윈-윈 관계는 지난해 중의원 선거와 올해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체제가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면서 붕괴됐다. 무엇보다 ‘정치와 돈’에 대한 공명당의 개혁 요구에 자민당이 미온적으로 반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공명당은 최근 젊은 당원 감소, 지방조직 약화 등으로 의석수를 잃고 있는 것에 위기감이 고조됐다. 공명당의 지지세 약화는 자민당의 ‘정치와 돈’ 문제로 심화되면서 연립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공명당의 ‘평화의 정당’ 이미지가 퇴색된 것에 대한 위기의식도 붕괴의 원인이 됐다. 최근 자민당의 우경화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불투명성이 심화하면서 공명당 내부의 불만은 높아갔다. 보수색이 강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자민당 새 총재로 등장한 것은 그 불만에 불을 붙였다. 다카이치 총재가 주도하는 안보 정책 강화와 헌법 개정 논의는 공명당의 평화주의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다당화 시대로
99년 체제 붕괴의 또 다른 원인은 자민당 내부의 권력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이후, 공명당과의 관계를 유지한 인물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였다. 하지만 최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의원을 지지했던 스가 전 총리 등이 패배했고, 공명당과 거리가 있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부총리 등에게 실권이 넘어갔다.
자공 연립정권의 해체로 인해 자민당이 장기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유럽의 다당화 국가들처럼 일본도 여러 정당이 경쟁·연합·분열을 반복하며 정국을 형성하는 다당화 시대로 들어섰다는 의미이다.
일본 중의원 465석의 과반은 233석이다. 자민당은 196석,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48석을 보유하고 있다. 야권은 입헌민주당과 일본유신회(35석), 국민민주당(27석) 등 3당이 연합하면 자민당을 넘어서는 210의 의석수를 확보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이달 말 치러질 총리 지명 선거에서 과반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즉 여야 어느 쪽도 ‘50+α’의 승리연합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가올 총리 지명 선거에서 각 정당의 대응이 주목된다. 자민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혹은 야당이 단결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총리 지명은 중의원에서 투표 총수의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받게 된다.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상위 두 명의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현시점에서 야당들의 정책 조율이 쉽지 않아 다카이치 총리의 탄생이 유력한 것으로 보이나, 상황은 유동적이다. 입헌민주당은 소수당 국민민주당에 총리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고 있다. 야당의 단일화는 이제 현실적인 선택지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정권의 불안정성과 정국의 불투명성은 높아질 것이다.
◇정권의 유동화
다카이치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그 기반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약할 전망이다. 중의원에서는 196석으로 과반에 미달되며, 참의원에서도 자민당 단독 의석은 100석에 불과해 과반에 25석이 부족하다. 정권은 여소야대의 형태가 되어, 법안 심의나 예산 통과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야당 측이 결집한다면 정국은 더욱 혼미해질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권을 잡은 총리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라는 선택지를 만지작거릴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와 돈’ 문제로 신뢰를 잃은 자민당이 향후 선거에서 과반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자민당의 지지표가 다양한 정당으로 이전되면서 다당화가 정착될 수 있다.
앞으로 일본 정치는 소수 여당이 집권하면서 정당 간 연립에 따라 정권이 유동화되는 현상이 불가피해졌다. 동시에 정치적 불안정과 정책 지연의 리스크가 높아졌다. 인기 없는 정책은 추진하기 어려워졌고, 야당을 무마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다. 소수 여당은 내각불신임안 등으로 쉽게 위기에 처하며, 정권의 안정을 담보하기는 더욱 힘들어져, 장기적으로는 정계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지금은 한·일 협력이 절실한 시기이다. 소수 여당 집권 아래 일본 정국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정치가 불안정하면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화답하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일정책에서 실용외교를 표방하면서 한·일관계도 안정된 길로 들어섰다. 일본에 어떤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윈-윈하는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관계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두 나라는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상호이해와 이익이 맞닿는 지점을 전략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정치적 구호보다 구체적 협력의 성과가 양국 관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한·일 윈-윈 과제
한·일국교 정상화 60년의 역사 위에서 앞으로의 60년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인식과 정책이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의 인식, 윈-윈 협력, 그리고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전략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일본 오사카 총영사
■ 용어 설명
‘자공 연립’은 일본의 자민당과 공명당이 함께 구성한 연립정부. 일본 보수세력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가능하게 한 연립정부 형태로, 1.5당 체제의 토대가 됨.
‘승리연합’은 정당·정파들의 선거 승리를 위한 연합. 정치학자 윌리엄 라이커는 유력 정당이 의회 다수파를 형성하기 위해 의석 과반인 ‘50+α’의 ‘최소 승리연합’을 시도한다는 가설을 제시.
■ 세줄 요약
99년 체제의 붕괴: ‘99년 체제’는 자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안전장치였음. 공명당이 최근 ‘자공 연립’에서 이탈한 것은 ‘99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켰다는 점에서 파장이 커. ‘정치와 돈’ 문제가 큰 원인.
다당화 시대로: 자공 연립정권 해체로 자민당의 26년에 걸친 장기 권력독점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일본 정치는 다당화 시대로 접어들어. 향후 누가 일본 총리가 되더라도 정권의 불안정성과 정국의 불투명성은 높아질 것.
한·일 윈-윈 과제: 일본 정치가 불안정하면 정책 리스크도 높아져 양국 관계가 불안해질 가능성 커짐.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인식, 윈-윈 협력,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 전략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 발전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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