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이후의 질서

케네스 로고프 지음│노승영 옮김│윌북

 

전세계 GDP서 미국 비중 축소

트럼프 행정부 자의적 금융제재

신뢰 깨져 탈달러화 움직임 유발

인플레 조짐·가상화폐 열풍까지

 

저자 IMF 근무 경험 바탕 삼아

통화 패권 전쟁 생생하게 전달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달러 이후의 질서’를 통해 전 세계적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달러 패권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달러 이후의 질서’를 통해 전 세계적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달러 패권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는 건 이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무역 및 금융거래에서 달러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달러 이후의 질서’에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경고한다. “달러 패권은 2015년에 정점에 도달해서, 그 뒤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향후 10년 안에 전 세계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을 겪고, 달러의 압도적인 구매력이 형편없이 쪼그라들 수 있다.”

물론, 아직 이른 경고다. 여전히 전 세계 모든 외환 거래의 90%에 달러가 쓰이고, 석유 거래의 80%도 달러로 이뤄진다. 국제 금융 시스템도 달러를 기축통화 삼아 구축돼 있다. 그러나 권력은 스스로 망하는 법이다. 팍스 달러가 붕괴하는 건 미국이 스스로 달러 패권을 파괴하는 결정을 멈추지 않아서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기축통화의 특권적 힘은 위기에서 더 선명해진다. 위기가 심해지면, 달러 수요가 증가해 그 가치가 높아진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경기침체 등에서 미국이 저금리로 부채를 발행해 쉽게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다. 돈을 빌려 재정 적자도 메우고, 막대한 군비도 유지하면서 미국은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미국이 자기 힘을 과신한 나머지 빚잔치가 영영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흥청망청’이 버릇되면, 제아무리 부자라도 빈털터리로 전락하는 건 당연한데도 말이다.

저자는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의 기축통화가 어떻게 그 힘을 잃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최근 자료와 통계를 제시하면서 이런 불균형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달러의 패권이 실력과 행운의 결과였던 만큼, 무능과 불운이 겹치면 언제든 소멸할 수 있다. 지난 70년간의 달러 지배력은 미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규모와 군사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무역을 개방하고, 법치를 보장하며, 이민을 활성화하던 시기에 이뤄졌다. 루블화도, 엔화도, 유로화도, 위안화도 이 역할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미국은 사라졌다. 미국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지고, 적자와 부채는 커지고 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 이후, 예측 불허의 보호무역 정책이 남발되고, 자의적 금융 제재가 횡행하며,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까지도 무기로 만지작대는 중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안일한 대응과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에 대한 도전도 만연하다. 이 모든 정책은 국제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에 대한 믿음을 파괴한다.

미국 달러는 금 같은 현물과 연동하지 않기에 종이 위 숫자에 불과하다. 그 구매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다른 나라들이 믿을 때만 그 가치가 안전하게 유지된다. 저자는 미국이 대규모 부채를 방치하고 재정 적자를 해소하지 못하면, 달러가 약해지고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서 금융위기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실물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일했던 실무 경험을 바탕 삼아 저자는 통화 패권을 둘러싼 전 세계의 움직임을 거의 마피아 소설 같은 분위기로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원제 ‘Our Dollar, Your Problem’(우리 달러지만, 당신들 문제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 말은 1971년 미국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유럽 지도자들에게 한 말이다. 달러의 금 태환을 잠정 중지한 직후의 일이다. 우리 돈을 우리 맘대로 쓸 테니, 너희가 그 결과를 감당하라고 협박한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과 시장 지배력 덕에 이 강압이 통했다. 가령, 1980년대에 일본 엔화가 부상하자, 미국은 일본 손목을 강제로 비틀어 ‘플라자 합의’를 맺게 했다. “미국은 다른 경제가 잘되는 걸 어느 정도 내버려 두지만, 너무 잘나가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위안화에도 가능할까. 미국은 중국을 두 번째 일본으로 만들고 싶어 하나, 세계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 탓에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게다가 달러를 무기 삼아 금융 제재를 남발하는 미국의 정책은 다른 나라의 불신과 함께 전 세계적 탈달러화 움직임을 유발하고 있다. 내 돈을 미국 맘대로 처리하는데, 누가 기꺼워하겠는가. 위안화가 세계 기축통화가 될 순 없다. 권위주의 정치와 자의적 법치주의에 더해 내부 성장 동력마저 떨어지면서 그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가 천하무적도 아니다. 미국의 정치적 불안정과 법치에 대한 부정, 과도한 부채와 인플레이션 조짐, 중국의 달러 블록 이탈 움직임, 가상화폐의 부상 등 달러의 미래를 흐리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그 탓에 세계는 점차 아노미적 불확실성에 휘말리는 중이다. 456쪽, 2만9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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