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가 만난 사람 - 정구현 前 삼성경제연구소장
Q. 미·중 무역전쟁의 승자는?
세계 제조업 35% 중국이 차지
같은 제품도 美서 조립 땐 3배↑
기술·경제 양강구도 더 세질 것
미·중 사이 줄 선다는 건 말안돼
美 MBA 교육받은 3·4세 오너家
한국과 안맞는 재무적 경영 치중
금융 아닌 산업 자본주의로 가야
한국 최고 문제는 노동시장 경직
너무 빨리 선진국 흉내내고 있어
주4.5일제 등 기업자율에 맡겨야
인터뷰=이관범 산업부장, 정리 = 김호준 기자
중국의 기술 패권 공세가 파죽지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센 대중(對中) 통상 압박에도 중국은 버티며 오히려 희토류와 같은 광물 지배력을 앞세워 강한 반격에 나서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점화된 2018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외통수에 몰린 것 아니냐는 반응조차 나온다. 중국은 자신감이 팽배하다. 7년 전만 해도 미국의 반도체 봉쇄에 심장을 빼앗긴 것이라며 경악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미국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용을 억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진짜 위기는 미·중 무역전쟁의 포화가 걷히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K-인더스트리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중국발 위협을 말이다. 삼성이 기술 패권 전쟁에서 일본 경쟁 기업을 누르고 글로벌 기업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한 2000년 중후반 시절,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정구현 제이캠퍼스 원장을 지난 9월 30일 서울 종로구 각당에서 만나 향후 정세와 한국 산업의 갈 길을 물어봤다.
―미·중 대결의 결과는 결국 어떨 것으로 보는가.
“둘 다 이길 것이다. 일본·유럽연합(EU)·한국 등 나머지 선진국은 모두 ‘루저’(패배자)로 전락할 것이다. 갈수록 기술·경제 분야에서는 미·중 양강 구도가 더욱 굳어질 것이다. 정보화 혁명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 변화를 이끈 기업가정신 유무가 근본적으로 희비를 가르고 있다. 세계 디지털 전환은 1975년 PC가 등장하고 1990년 인터넷이 나오면서 본격화했고, 중국과 미국은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탔다. 중국의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소위 ‘BAT’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1998~2000년 창업했다. 미국의 구글·아마존·페이스북도 1996~2004년 사이에 탄생했다. 인터넷의 등장 당시 중국과 미국에서 생긴 기업들이 지금 세계 경제 주도권을 쥐고 있다”
―반면교사는?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은 1980년대만 해도 세계 1등이었는데, 1990년대부터 급격히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 엔화 가치를 높인 플라자합의로 일본 경제가 추락하기 시작했다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이 왜 디지털 전환을 못 했냐면 대부분 기업이 ‘주인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센 교수가 쓴 ‘혁신기업의 딜레마’라는 책에 잘 나오는데, 파괴적 혁신은 기존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일본 자본주의는 종업원 자본주의다.의사결정권을 오너가 아니라 종업원이 갖고 있다. 이들은 파괴적 혁신을 못 하고 개선만 한다. ”
―오너 경영이 우세한 우리 기업은 어떤가. 파괴적 혁신을 하고 있는가.
“오히려 더욱 보수화하며 파괴적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본다. 기업인 10명 가운데 1~2명만 장기적으로 혁신을 이루는 정도다. 오너는 대체적으로 장기적 안목을 갖고 중장기 투자를 결단하지만, 요즘 한국의 많은 3·4세 오너가들은 재무적 경영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의 산실인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으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무적 경영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주요 목적이다. 이게 미국에는 맞지만, 여전히 제조업이 주력인 한국에는 맞지 않는 옷이다.산업 자본주의 국가에서 금융 자본주의적 경영을 하려니 문제가 생긴다. 3·4세 경영자들이 재무 관리적 시각에서 돈의 흐름만 알고 기술과 사람, 고객을 경시한다. 우리나라의 사모펀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모펀드라는 게 결국 기업을 사고 가치를 올려서 팔아먹는 것이 아닌가. 이들이 장기적으로 기술개발과 인재에 투자하겠는가.”
―중국과 한국의 기술격차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결국 시장에서 이기려면 종합적인 산업 경쟁력이 중요하다. 산업 경쟁력은 품질·원가·기술·브랜드 4개로 따지는데, 원가는 말할 필요 없이 불리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 10분의 1이상 차이가 난다. 품질도 거의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기술은 산업에 따라 다른데 메모리반도체를 빼고는 대등하거나 밀리는 수준이다. 한국이 유일하게 앞서 있는 건 브랜드다. 종합적인 경쟁력에서는 전통 제조업과 첨단 산업에서 모두 중국이 앞서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나?
“한국 제조업은 중국을 빼면 1등이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이 분리되면 그 산업에서는 가져갈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게 조선업과 원자력이다. 자동차도 만약 중국 전기차를 압박하면 우리가 틈새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소비재 중에서 새로 찾아야 할 것 같다. 화장품·식품처럼 한류의 덕을 보는 소비재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젠틀몬스터’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인데, 원래 안경 산업은 유럽이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더 잘나간다. 또 하나는 특화로 가는 것이다. 석유화학, 특히 범용 제품 같은 경우 중국과 게임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바이오 같은 유망산업이다. 바이오 산업도 종류가 많기 때문에 특화가 필요하다. ”
―중국의 공세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이제 연 3만7000달러 소득까지 올라왔는데, 말 그대로 개마고원에 올라온 상태다. 지금부터 얼마나 버티느냐가 핵심이다. 지금 우리의 생활·산업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경쟁력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선진국 흉내를 내고 있어 문제다. 주 4.5일제 같은 건 도입 추진이 너무 빠르다. 우리나라는 아직 일을 더해야 한다.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 모든 걸 노동시장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데 왜 획일적 규제를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경제 최고의 문제는 노동시장 경직성이다. 정부가 나서서 점점 경직되게 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년까지 연장하면 비용이 높아져서 우리 기업이 상당히 불리하다.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법도 기업의 엄청난 비용 부담을 수반한다. 안 그래도 경쟁하기 힘든데, 더 힘들게 만드는 꼴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번 정부에서 ‘돈 벌 생각을 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과 같은 규제환경에서는 투자가 일어날 수가 없다. 기업이 할 수 있는 건 고용을 줄이는 방법뿐이다. 결국 AI를 더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근로자 1000명당 로봇 활용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런 추세가 가속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어떤가.
“중국은 당이 먼저 생기고 정부가 생겼다. 중국 공산당은 단순 정치세력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을 세계 2대 강국으로 만들었다. 독재국가라고는 하지만 지금도 70% 이상의 인민이 지지하는 정권이다. 일반적인 공산당은 경제를 망가트리는데, 중국은 경제를 세웠다. 왜냐면 중국 공산당 자체가 굉장한 능력주의에 기반한다. 능력자가 승진한다. 우수한 인재가 당원이 되어 여러 보직을 거치면서 능력이 올라간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은 시장의 기능을 살린다.”
―산업 정책은 어떤가.
“중국의 접근 방법은 될만한 것 다 해보고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을 골라서 집중 투자하고 정부가 밀어주는 모델이다. 시장을 잘 활용한다. 특히 처음부터 경쟁을 세게 붙여서 이기는 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운다. 시장 경쟁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엄연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추구하는데.
“한국의 실력주의는 왜곡된 실력주의다. 중국이 일 실력주의라면 한국은 학력 실력주의다. 또 한국은 세습이 많다. 그리고 정치세력이 선거로 당선돼야 하기 때문에 우리 정치는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이다. 지난 20년 동안 진보건 보수건 모두 포퓰리즘적 정책을 썼다.”
―궁극적으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안미경중(安美經中)과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서방국가는 모두 안미경중이다. 중국에서 팔리는 전기차 3200만 대 중에 국산이 70%고 30%는 수입이다. 결국 중국 시장에 제품을 안 팔고서는 못 배긴다. 엔비디아든 삼성이든 중국시장을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세계 경제의 40%가 중국이라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애플도 아직 중국에서 전체 스마트폰의 90% 이상을 생산하는데, 미국에서 조립하면 원가가 3배는 올라간다. 미·중 사이에 줄을 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中은 기술로 사회를 바꾸는 나라… ‘중국판 실리콘밸리’ 성공비결 배우러 선전 다녀와”
■ 2018년 세운 ‘제이캠퍼스’
中 제조업 시장·기업 지속 연구
정구현 원장은 기업과 기업인이 격변하는 시대 변화 속에서도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18년 ‘평생학습 네트워크’를 모토로 제이캠퍼스를 세웠다. 정 원장은 최근에는 기업인들과 ‘중국판 실리콘밸리’인 선전 시찰을 다녀오는 등 ‘중국 제대로 알기’에 힘을 쏟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3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양한 이유로 중국을 줄줄이 탈출했다. 하지만 철수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계속 남아서 중국 시장과 기업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이제 전 세계 제조업 1등 국가이자 산업을 이끄는 나라인데, 제조업을 하는 우리나라가 그냥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0개 기업을 골라서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하고 있다. 화웨이·텐센트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제일 중요한 창업 도시가 선전·톈진(天津)·항저우(恒州)·베이징(北京)이고, 그중 하나인 선전을 우리 기업인 20여 명이랑 다녀왔다.”
―선전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점은.
“중국은 기술로 사회를 바꾸는 나라다. 모든 결제를 간편결제로 하고 이를 통해 모든 인민들의 신용등급을 매긴다. 신용등급을 낮게 받으면 물건을 살 수가 없다. 음주운전을 하면 신용이 마이너스가 된다. 일종의 디지털 감시사회인데, 이걸로 사회를 바꿔 놨다. 기술로 새로운 신용사회를 만들고 있다. 인민의 자유는 없지만 사회를 위해서는 침해는 어느 정도 허용하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중국의 ‘저공 경제’라고 해서, 500m 이하에서 날아다니는 도심항공교통(UAM)을 구축하는데 이를 기업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지방정부와 협력해서 한다. 다시 말하면 민관 협력,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거기에 대학까지 끼워서 한다.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도와주기보단 규제를 한다. 우리가 정부와 기업이 등거리 관계라면, 중국은 완전히 밀착해 있다. 그만큼 부패도 많지만,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곳에 사회적 인센티브를 많이 준다.”
―선전은 본래 중국의 작은 어촌이었는데, 40년 만에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기술 메가 시티로 개벽했다. 비교하면?
“중국에서는 선전 같은 곳이 많다. 큰 차이는 선전은 제조업의 중심이고, 실리콘밸리는 소프트웨어가 중심이다. 대표적으로 텐센트 같은 기업이 있고, 첨단 로봇이나 데이터센터 기업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중국의 삼성전자 격인 화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선전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부르는 건 무리가 없다. 우수한 인력과 막대한 자본, 거대한 시장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 약력
△1947년 서울 출생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 박사 △연세대 경영대 교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원장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한국경영학회 회장 △한국경영교육인증원 원장 △경기도선진화위원회 위원장 △자유기업원 이사장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 △KAIST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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