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데 ‘마른안주’도 마찬가지다. ‘마른’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니 이것을 만드는 과정을 감안하면 ‘말린’이 되어야 한다. ‘마른’이 맞다면 이의 반대말을 쓴 ‘젖은안주’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메뉴는 찾아볼 수 없다. 단어의 구성을 살펴보면 ‘말린 안주’로 띄어 써야 하는데 한 단어처럼 붙여 쓴다면 언제부터 붙여 쓰게 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뒤져보면 ‘마른 안주’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에 반해 ‘젖은 안주’는 거의 발견되지 않으니 아무래도 말린 음식이 드물기 때문에 쓰이게 된 말로 보인다. 대부분의 식재료에는 수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은 젖은 음식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음식을 가공하거나 조리할 때 물과 기름을 쓰는 일이 많으니 많은 음식이 젖은 상태여서 굳이 젖은 음식이란 이름이 따로 필요하진 않다.
식재료를 말리는 것은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나물, 해산물, 고기 등을 말려 수분을 제거하면 부패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린 식재료는 그 자체가 최종적인 음식물이라기보다는 가공과 조리를 위한 재료였다. 이것을 바로 먹는 음식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아무래도 술꾼들, 특히 맥주를 좋아하는 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맥주가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가볍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으니 조금 가벼운 안주를 곁들여도 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때 술꾼과 장사꾼의 눈에 띈 것이 오징어와 북어 등의 건어물이었다. 그리고 형편이 넉넉한 이들은 생고기에 여러 양념을 가미해 말린 육포도 즐기게 되었다. 이것저것 함께 내어 구색을 맞추면 좋으니 땅콩, 과일, 과자 등도 곁들여지게 되었다. 이렇게 전형적인 맥주 안주로 자리를 잡게 되니 한 단어처럼 인식돼 굳이 띄어 쓸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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