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우버에서 만난 3040 운전자들

高물가에 삶 힘겹기도 하지만

 

고졸 후 학점 모아 학사 따고

결혼 기대하는 열정으로 살아

 

운전자 - 승객 떠나 대화하면서

절망 아닌 희망찬 미래에 한 표

지난 9월 말 오랜만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다녀왔다. 2010년 잠깐 들른 이후 처음이었다. 3박 4일 동안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돌아보고, 18세기 건물이 모인 역사보존지구를 산책했다. 뉴욕과 워싱턴 DC 사이에 있는 필라델피아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런지 그리 유명하지도, 관광객이 썩 많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 도시에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이 이뤄지고 1789년 헌법을 제정한 독립기념관이 있다. 독립선언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 후반 역사 보존 같은 도시재생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원도심 상주인구가 뉴욕 다음으로 많은 20만 명이나 돼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걷기 좋은 도시이고 대중교통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지만, 일정이 많아 우버를 몇 차례 이용했다. 미국에 살면서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아 사는 프로비던스에서도 자주 이용한다. 공유 경제 모델로 사업을 시작한 우버는 승객과 운전자가 서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평가에 새삼 신경 쓸 일은 없지만, 그래도 운전자에게 인사도 잘하고 내리고 탈 때 문을 거칠게 여닫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운전자가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으면 즐겁게 응한다. 10여 년 동안 우버를 이용한 경험으로 보면 약 70%는 대화를 즐기는 편이고, 20%는 영어가 서툴러 대화가 어렵고, 10%는 무뚝뚝한 편이다. 그러니 우버를 이용하는 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눌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필라델피아 일정 마지막 날 아침에 이용한 우버의 운전자는 30대 후반의 인도아(亞)대륙 출신 남성이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꽤 된다는 그는, 처음에는 뉴욕에 살았는데 원체 복잡하고 물가가 비싸 10년 전에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고 했다. 뉴욕에 비해 무척 살기 좋은 도시라고 했다. 나도 뉴욕 여행을 계획했다가 호텔 숙박료가 너무 비싸 포기하고 필라델피아를 선택했다고 했더니, 그는 지난봄 아이 둘을 데리고 뉴욕으로 짧은 가족여행을 했는데 타임스스퀘어 근처 하룻밤에 거의 500달러인 호텔이 썩 좋지 않아서 실망했다고 했다.

프로비던스에서도 갈수록 높아지는 월세에 대해 우버 운전자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을 살까도 했지만 너무 비싸고, 은행 대출 이자도 너무 높아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두 도시 우버 운전자들과의 대화 주제로 높은 물가가 빠지지 않은 셈이다. 정치 이야기는 조심하는 편이지만, 모두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을 것임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우버 운전자 대다수가 30∼40대라 가족을 부양하기 바쁜 나이이니 물가 걱정은 더 클 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또 다른 우버 운전자는 매우 깨끗한 캐딜락을 모는 40대 초반 흑인 여성이었다. 미국산 캐딜락은 거의 30년 만이었다. 차가 멋있다고 했더니 운전자는 고맙다며 자신을 위한 선물로 구입했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일하면서 조금씩 학점을 모아 작년에 드디어 졸업장을 받은 기념이라고 했다.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직장에서 승진했고,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어서 석사 과정도 밟고 싶다고 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에 이민 왔는데 그때부터 계속 필라델피아에서 살았다는 그는 많은 이민자 출신 우버 운전사처럼 꿈이 살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교육을 통해 성공을 추구하는 열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프로비던스로 돌아온 뒤인 며칠 전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젊은 남성 우버 운전자를 만났다. 한국과 일본에서 살았다는 나의 이야기에 그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본 생활과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K-팝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곧 결혼할 계획인데 신혼여행으로 한국과 일본을 생각했지만, 휴가를 길게 낼 수가 없어 비교적 가까운 멕시코 칸쿤으로 갈 생각이라는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문득, 오래전 한국에서 만난 젊은 세대의 순수함과 열정이 떠올랐다. 꿈도 많고 태도도 밝은,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MZ세대의 기운을 느꼈다.

우버 안에서 최근에 만난 이 세 사람의 운전자는 여러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모두 다 꿈이 살아 있어 보였다. 물가가 비싼 뉴욕을 떠나 필라델피아에서 만족하며 살거나,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신분 상승을 실현해 나가거나, 결혼의 꿈을 키우며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운전자와 고객이라는 관계로 인해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 밝은 표정과 목소리에서 그 꿈을 향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우버 운전자들과 대화할 때마다 미국에 건너온 수많은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꿈을 품고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미국만일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많은 사람이 꿈을 품고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매일 언론에서 쏟아지는 정치 뉴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왜 그런 건지 생각해 봐야 답답할 뿐이니, 나는 요즘 우버 운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미디어 노이즈’를 무시할 힘을 얻는다. 그 힘으로 내가 얻는 것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희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미래에 대해 절망이 아닌 희망 쪽에 한 표를 던진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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