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세계 곳곳에서 청년 봉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연계가 없는데도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대륙을 넘나든다. 냉전과 베트남 전쟁 시대의 ‘68운동’,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 2011년 아랍의 봄에 버금간다. 시위는 SNS로 정보를 공유하며 연대하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한다. 처한 상황이 같지 않지만, 특권층의 만성 부패와 경제 불평등 심화에 저항하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3일 동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은 Z세대 시위에 쫓겨 프랑스로 도망쳤다. 정부의 무능에 신물이 난 마다가스카르 청년들이 시위에 나선 지 10여 일 만이다. 네팔도 특권층 자제들의 명품 자랑과 이를 비판하는 SNS를 차단한 정부 조치에 대한 저항으로 정권이 무너졌다. 인도네시아에선 월 425만 원의 국회의원 주택 수당이, 동티모르에선 국회의원의 신형 승용차 지급 예산이 시위를 촉발했다. 남미의 페루와 파라과이,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도 청년층의 분노가 폭발했다.

세계 질서 재편의 불확실성과 통상 전쟁 여파로 ‘미래가 더 안 좋을 것’이란 불안감은 Z세대가 겪는 공통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세계일보, 전국지표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청년들이 정부와 여당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와 관세 협상 등의 평가에서 다른 세대에 비해 부정 응답률이 높았다. 심각한 실업률과 양극화,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값 때문에 연애, 결혼, 내 집 마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항거다. 하지만 Z세대 시위가 불안해 보이는 것은, 이전 세대의 청년 봉기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현실을 바꿔도 미래가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Z세대는 시위 현장에서 일본 인기 만화 ‘원피스(One Piece)’의 해적 깃발을 사용한다. 주인공 루피가 권력에 맞서 자유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이들이 시위에 나서는 이유와 같기 때문이다. 29년째 연재 중인 만화는 결말이 나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루피가 전설의 보물 원피스를 찾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Z세대 시위도 패배하지 않고 꿈꾸는 미래의 길을 여는 것으로 끝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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