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문화부장
1년여 전, ‘천 원짜리 영화의 가능성’(2024년 6월 14일)을 쓴 적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계에 위기론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배우 손석구와 손잡고 만든 단편 영화 ‘밤낚시’에 관한 것이었다. 신선한 시도가 돋보였다. 12분 59초 분량의 쇼트폼에, 티켓값은 겨우 1000원. 요즘 평일 극장 입장료가 당시보다 2000원이나 또 오른 1만5000원임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가격이다. 값이 저렴한 데다 완성도도 높아 관객들이 크게 호응했다. CGV 극장에서만 개봉하고도 4만6000여 명이나 들었다.
이후 또 한참을 시름하던 극장가에 최근 또 다른 시도가 눈에 띈다. 지난달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과 지난 15일에 깜짝 개봉한 강윤성 감독의 ‘중간계’다. 두 작품은 지향점은 다르지만,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을 과감하게 바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얼굴’은 넷플릭스 등장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던 주연 배우들의 몸값을 낮춰 ‘규모의 경제’를 이뤘다. 배우들에게 개런티를 지급하는 대신 지분을 나눠줘 초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가벼워진 몸에 철저한 프리 프로덕션과 효율화로 약 한 달 만에 한 편을 온전히 생산했고, 제작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중간계’는 이보다 더 실험적이다. 장편 상업영화로서는 처음으로 AI 배우를 도입했다. 금융범죄자와 이를 잡으려는 경찰, 그리고 조직폭력배가 한데 엉키다가 한꺼번에 교통사고를 당해 이승과 저승 사이쯤의 ‘중간계’에 갇힌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윽고, 이들의 영혼을 소멸시키려는 12지신 형상의 저승사자들이 등장해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이 저승사자들이 AI 배우다. 이들은 인간 배우인 변요한, 김강우, 양세종 등과 어울려 전혀 이질감이 없다. 나아가 안국역 인근과 조계사, 광화문 광장을 누비며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폭파와 액션을 선보인다. 기존의 CG 작업으로 했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었을 장면들이다. 그러나 약 2주일간의 촬영으로 마무리했다. 총 제작 기간은 5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윤성 감독은 “이를 CG로 했다면 한 신당 적어도 4∼5일이 걸렸겠지만, AI로 하니까 1∼2시간이면 끝났다”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촬영으로 현장이 끝나자 배우들이 오히려 “더 안 찍어도 되냐”고 물었을 정도다. 60분 분량의 입장료는 8000원. CGV에서만 개봉했는데도 첫날 박스오피스 ‘톱10’에 들었다.
이는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 한국 영화계에 많은 고민과 통찰을 던진다. 기존 영화 제작 방식 변혁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AI가 가져올 일자리 감소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비친다. 강 감독은 “앞으로는 위험한 사고 장면을 배우가 직접 찍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대역이나 CG 없이 AI 기술 하나면 대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일자리 감소의 우려가 있더라도, 한국 영화계는 이 같은 혁신이 절실하다. 이런 시도들이 단초가 되어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출신의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는 “인생은 영구적인 교정”이라며 수상의 원동력을 고백했다. 한국 영화도 끊임없는 교정과 시도를 통해 분명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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