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명 동남아조직 탈출 한국인

 

“중국·대만팀보다 수익 압도적

실적 낮으면 캄보디아로 유배”

고수익을 미끼로 한 취업 사기에 연루돼 납치·감금된 한국인이 캄보디아에만 3000명이 넘는다는 전직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증언이 나왔다. 라오스·미얀마·태국 등 인근 국가까지 포함할 경우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베트남·캄보디아 등에 사무실을 둔 250명 규모의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서 1년 6개월 동안 몸담았던 전직 조직원 A 씨는 17일 문화일보에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지난 6월 ‘몸값’을 내고 탈출한 뒤, 해외 모처에 은신 중이라고 밝혔다.

A 씨가 속했던 범죄조직은 △중국의 해킹팀 △한국의 수금책 및 통신팀 △동남아시아 텔레마케팅(TM)팀으로 나뉘어 활동했다. 그에 따르면, 해킹팀이 한국인의 개인정보를 해킹하면 이를 TM팀에 넘긴다. 이후 TM팀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보이스피싱을 시도하고, 한국에 있는 수금책이 중국으로 수익금을 송금하는 구조로 운영됐다. A 씨가 일했던 베트남 소재 TM팀은 한국 영업시간에 맞춰 일했다. 조직원들에게는 역할(검찰·금융기관·택배업체 직원)에 따라 A4용지 14∼15쪽 분량의 대본집이 주어졌다. A 씨는 “상가 건물 한 사무실에서 관리자 5∼6명이 조직원 20명을 관리했다”며 “식사도 배달만 허용하고 외출도 제한된 채 하루종일 전화만 했다”고 말했다.

TM팀은 범죄 대상 국가에 따라 중국팀, 대만팀, 한국팀으로 운영됐다. A 씨는 “한국팀이 1주일에 벌어들이는 범죄 수익은 평균 20억 원으로, 이는 다른 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조직원 대부분이 20·30대 청년들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고수익 일자리’에 속아서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A 씨는 “(한국팀이) 수익이 가장 많은 이유는 개인별 대출 가능 금액이 많고 은행에서 현금 인출이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납치·감금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캄보디아는 실적이 저조한 조직원이 보내지는 일종의 ‘유배지’ 성격이라고 A 씨는 전했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공안 때문에 폭행·감금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일 못하는 사람들 위주로 ‘바람 쐬러 갈래요’라고 유인한 뒤 캄보디아에 밀입국한다”며 “밀입국 과정에서 사망자가 빈번히 발생하고, 폭행·구타는 물론 회식 때 술에 마약을 타 조직에서 나갈 수 없게 길들인다”고 설명했다.

동남아 피싱 범죄조직을 수사한 경찰관들도 범죄 수법과 조직 운영 방식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경찰관은 “모집책을 통해 통장을 대여하는 대신 통장 대여자를 직접 범죄단지로 끌어들이고, 통장이 피싱 자금세탁용임이 들통나지 않게 하려고 약 1주일간 사용한 뒤 거래를 정지시키는데, 그사이 입출금된 자금은 수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취업난을 겪는 20·30대뿐 아니라 사업에 실패하거나 일자리를 잃은 40대 이상도 고수익 미끼에 넘어가 동남아로 출국해 범행에 가담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달 초 기소된 40대는 생활고에 지인을 따라갔다가 범죄조직에 가담했으며 모집책에 이어 콜센터 중간책 역할까지 했다.

노지운 기자, 김유정 기자, 박천학 기자
노지운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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