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2025 노벨 평화상 수상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20년 이어진 권위주의 정권 대항… 시민운동가 출신 지도자
의원직·피선거권 박탈 당해 대선 출마길 막히자 단일화
마두로 당선뒤 강경탄압에도 거리서 시민들과 ‘자유’ 투쟁
“그녀의 목소리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민주주의 일깨웠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2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를 선정했다. 마차도는 독재정권의 압박과 정치적 금지령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을 멈추지 않은 ‘불굴의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다. 20년 넘게 이어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와 경제 파탄 아래에서 마차도는 거리와 의회를 오가며 자유와 정의를 외쳐왔다. 이번 수상은 현재까지 마차도의 노력이 한 개인의 투쟁을 넘어,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독재정권에 맞선 ‘철의 여인’ =마차도는 1967년 수도 카라카스에서 태어나 명문 안드레스 베요 가톨릭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으며, 젊은 시절부터 사회 참여 의식이 강했다.
1990년대 후반, 우고 차베스의 등장으로 베네수엘라 정치가 요동치자 마차도는 ‘조용한 전문가’에서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신했다. 2002년 그는 시민단체 ‘수마테(Sumate)’를 공동 창립해 부정선거 감시와 투명성 강화를 위한 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차베스 정부는 석유 수익을 기반으로 복지 정책을 확대했지만, 동시에 선거 제도와 사법부·언론을 장악한 상태였다. 이에 맞서 마차도는 “민주주의는 투표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며 시민의 손으로 선거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야권 연합 후보로 미란다 주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의회에서 정부의 부패, 언론 통제, 사법 장악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특히 2012년 의회 연설에서 “대통령은 나라가 아니라 권력을 사랑한다”고 직격하며 차베스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다.
2014년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차베스 정부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했다. 의회는 긴급 표결로 의원직을 박탈했고, 검찰은 마차도를 폭동 선동 혐의로 기소했다. 출국이 금지되고 공직 출마 자격도 박탈됐지만, 마차도는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행진을 이어갔다. “자유를 잃은 나라는 살아 있는 감옥”이라는 그의 발언은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회자됐다.
시민 사이에서 마차도는 곧 ‘저항의 상징’이 됐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들의 부모들이 “마차도가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라고 외쳤고, 외신들은 그를 ‘철의 여인(Iron Lady of Caracas)’이라 평가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WP)는 “마차도의 연설은 베네수엘라 여성의 정치 참여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는 현재 약 275명의 정치범이 수감 중이며, 이 중 100명 이상이 3년 넘게 재판 없이 구금돼 있다. 마차도의 측근들 역시 여러 차례 체포 영장이 발부됐고, 사무실이 급습당하기도 했다. 마두로 정권의 탄압은 그 자체로 마차도가 이끄는 민주화 운동의 위험성을 방증했다.
◇출마 금지에도 베네수엘라 ‘민주 전선’ 이끈 리더십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마두로 정권은 또다시 마차도의 후보 등록을 막았다. 선관위와 대법원이 ‘공직 박탈 처분’을 근거로 들었지만, 실상은 야권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그의 출마를 봉쇄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였다.
출마가 좌절된 이후에도 마차도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못 나가면, 우리가 나간다”며 야권 단일화를 주도했다. 그는 대학교수 출신의 코리나 요리스와 전 외교관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잇따라 후보로 세워, 정권 교체의 불씨를 살렸다.
대선 직후 야권은 자체 입수한 개표 데이터를 공개하며 전체 투표소의 73.2%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WP도 독립 분석에서 “야권이 공개한 2만3720개의 봉합서를 검토한 결과 곤살레스가 67%, 마두로가 30%를 득표했다”고 전했다. 반면 베네수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CNE)는 마두로가 51.2%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결과와 야권 집계의 괴리가 20%포인트 이상 벌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항의 시위가 폭발했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마라카이보, 발렌시아 등 주요 도시에서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알자지라에 따르면 8월 중순까지 최소 25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부상했으며, 2400명 이상이 체포됐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마두로 정부가 시위대와 언론인을 무차별 구금했다고 비판했다.
경찰의 강경 진압 속에도 불구하고 마차도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숨지 않겠다. 끝까지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시민들에게 ‘끝까지 싸우는 지도자’로 각인됐다. 그는 “우리는 대통령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제도를 되찾으려는 것”이라며 “굶주림은 폭정의 결과”라고 말했다. 마차도의 메시지는 지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SNS에서는 ‘마차도가 베네수엘라다(#MachadoEsVenezuela)’ 해시태그가 확산됐고, 대학가에는 “마차도 세대(Generacion Machado)”라는 말이 등장했다.
◇세계가 인정한 ‘베네수엘라의 희망’ =노벨위원회는 마차도를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비폭력적 저항과 민주적 전환을 이끈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특히 “구금과 협박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선거와 인권을 지키려 한 그의 헌신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마차도는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성명을 내고 “이 상은 나 개인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베네수엘라인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요 서방 언론들은 마차도를 “21세기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평가했으며, 미국, 유럽연합(EU), 라틴아메리카 주요 국가들도 그의 수상을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이정표”라며 환영했다.
현재 마차도는 신변 위협 속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체포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은신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지만, 여전히 야권과 시민단체를 원격으로 조율하며 정권의 부정 선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의 측근들은 “마차도는 언제나 국민 속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했다.
마차도의 정치 노선은 명확하다. 시장경제 회복, 사법 독립, 국제사회 복귀다. 마두로 체제하에서 무너진 법치와 경제 기반을 복원하고, 부패한 국가 석유공사를 개혁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단순히 ‘반(反)마두로’가 아니라, ‘정상국가 베네수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노벨상을 수상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마차도 앞에 놓인 현실적 과제도 산적하다. 야권의 분열을 봉합하고, 초인플레이션과 외채 위기를 돌파할 경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로이터통신은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와 인도적 지원을 국민 삶의 개선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반발도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존재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희망의 신호탄’, 그리고 정권에는 ‘압박의 경고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녀의 목소리는 베네수엘라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민주주의를 일깨우고 있다”며 “마두로 체제의 장기 독재를 흔든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하나”라고 전했다. BBC는 “마차도의 투쟁은 개인의 권력 쟁취가 아니라, 제도의 회복과 국민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정지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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