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며칠간은 산행에서 하산할 때마다 배낭이 묵직했다. 우연히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만난 알밤 노다지에 이성을 잃었다. 그때부터 밤나무 근처만 지나면 지면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조바심 속에 며칠째 밤 줍기에 열을 올리다 보니 심마니가 된 느낌이다. 산행은 표류하여 등정은 잊었다.
산행의 호연지기와 횡재의 뿌듯함을 맞바꾼 것 같아 쓴웃음이 절로 난다. 박순배의 화면 속 대룡산의 아우라를 마주하고서야 자각된 것이다. 꾸밈없는 필치와 담백한 색조는 작가와 산이 오랜 시간 교감해온 흔적이다. 세잔이 생빅투아르와 공간적으로 교감했다면, 작가와 대룡산은 시간 속에서 교감한다.
하나의 대상을 사분하여 사계의 파노라마로 표현한 것이 이채롭다. 일루전이나 현상은 여러 모습으로 바뀌지만, 실재는 하나라고 역설한다. 가슴과 머리를 동원해 품는다 해도, 대자연의 전모는 그렇게 파편으로만 다가오는 것인가. 기교도 설명도 필요치 않은 이유는 그림이 자연의 한 파편이기 때문이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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