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행정전산망을 마비시킨 지난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마치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배터리 이설 공사를 맡긴 것과 같은, 황당무계한 인재(人災)임이 확인됐다. 대전경찰청 수사팀의 22일 브리핑에 따르면, 당초 두 업체가 경쟁 입찰로 공동 수주했으며, 이들은 제3 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이 업체는 또 다른 업체 2곳에 재하도급을 줬다. 이 업체들은 하도급 과정의 불법성을 숨기기 위해 하도급 업체 작업자들이 원도급 업체 작업자인 것처럼 서류 조작도 했다고 한다. 작업자들은 전기 관련 자격증은 있지만, 배터리 이전 경험은 없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전기공사업법상 원도급 업체의 하도급이 금지돼 있다. 이런데도 버젓이 하도급에 재하도급까지 자행됐다. 작업자들은 배터리 충전율을 30% 이하로 낮추고 절연복·절연 공구를 사용해야 하는 기본 안전수칙조차 몰랐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 당시 배터리 충전율이 80%에 달했고, 전동 드릴까지 사용됐다. 경찰은 현장 관리자와 시공·감리업체 관계자 등 실무 책임자 5명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나 꼬리 자르기 식으로 끝나선 안 된다.

이번 사태는 국가 핵심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얼마나 허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총괄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고, 조달청은 불법 하도급을 방치했으며, 관리원은 감리조차 형식적으로 처리했다. 행안부 장관을 비롯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무선에서 최고 윗선까지 책임 소재를 철저히 밝히고, 엄중한 문책을 함으로써 일벌백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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