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주 방문을 앞두고, 한미 관세협상이 한두 가지의 쟁점만 남겨둔 상태로 알려진 가운데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 현지 협상을 마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2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중요한 계기”라면서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양국은 총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중 매년 250억 달러씩 8년간 2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보증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정감사에서 밝힌 ‘외환 충격 없이 조달 가능한 연 150억∼200억 달러’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 총재는 미 재무부의 외환안정화기금도 실제 운용 가능 규모가 300억 달러에 불과해 통화스와프로 충분치 않음을 시사했다.

주목할 것은 미국 내에서 쏟아지는 비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관세 덕분에 한·일·유럽연합(EU)에서 모두 1조5500억 달러를 벌었다”고 자랑한다. 관세라는 세금 대신 자신이 주도하는 펀드에 엄청난 현금을 받아 챙기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22일 사설에서 ‘대미 투자 펀드는 의회의 견제나 입법 절차 없이 운영되는 사실상 국부펀드’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자의적 투자로 정치적 부패가 초래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원유·가스 같은 원자재 수출액 등을 기초로 하는 국부펀드는 일반 연기금과 달리 최종 수혜자가 명확하지 않아 공격적이고 불투명한 투자를 하는 속성이 있다.

연 250억 달러라 해도 우리 예산의 5%에 맞먹는다. 자칫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에 휘말린 과도한 양보는 금물이다. APEC 정상회의 일정에 쫓겨 지나치게 서두를 이유도 없다. 협상은 우리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우리 의사가 투자 결정에 충분히 반영되는 구조로 마무리돼야 한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맞은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정부는 마지막까지 냉정함을 유지하며 국가 이익을 지키는 협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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