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석모도, ‘돌 많은 모퉁이’ 뜻

보문사 창건 설화도 돌 얘기

 

한민족 ‘거석 숭배’에 주목

많은 작가가 돌 소재로 작업

 

‘비디오아트 선구자’ 박현기

소원 돌탑에 영감받아 작품

지난 연휴 강화도 석모도에 다녀왔다. 섬 이름 ‘석모’는 ‘돌이 많은 모퉁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석모도에는 돌이 지천이었고, 돌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보문사에 갔더니 절의 탄생 설화부터가 돌과 연관되어 있었다. 오랜 옛날 마을 어부들이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22개의 돌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고 한다. 다른 곳에 그물을 쳐도 같은 돌이 계속 올라오자 두려워하며 집에 돌아온 날, 꿈에 노스님이 나타나 그 22개의 돌을 건져 올려 명산에 모시라고 해서 지은 절이 보문사라고 한다. 보문사에는 거대한 자연 석굴이 있는데, 그 안에 돌인지 부처인지 모를 정도로 우물쩍 만든 것 같은 보살과 나한 총 22구가 모셔져 있다.

이런 고대 설화는 현대인에게도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이 설화는 고대 이 땅의 사람들이 돌을 숭상하던 신앙에서 부처를 모시는 불교로 대상을 옮겨가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우리는 오래된 거석(巨石) 숭배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 강화도에 지천으로 깔린 고인돌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심지어 불교가 들어와도 ‘그냥 돌’을 모시던 것에서 ‘부처를 새긴 돌’을 모시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크게 인식을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돌탑도 마찬가지다. 마을 어귀, 산기슭 어디에나 사람들이 오가며 쌓아 놓은 돌탑들을 보라. 불교가 유입된 후 잘 지어진 사찰 앞에 석탑이 그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돌에 실어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탑 위에 자신의 돌 하나를 얹는다. 마치 우리의 유전자가 그 일을 시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런 한국인들의 행동에 착안해 작품을 한 현대미술가가 있었다. 박현기(1942∼2000). 한국에서 최초로 비디오 아트를 시도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6·25전쟁 피란길에 사람들이 오가며 돌탑을 쌓는 모습을 매우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한다. 피란을 가는 와중에도 길가의 돌을 주워 탑을 쌓을 여유가 어디에 있는지 신기했다는 것이다. 이후 성장한 그는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마이산의 돌탑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일종의 설치미술로 이보다 더 웅장하고 공동체적인 것이 있을까.

그 후 1970년대부터 박현기가 시도한 것은 돌탑을 쌓긴 쌓되, 그 사이에 TV 모니터를 끼워 넣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모니터 화면에는 돌의 영상이 송출되는 식이었다. 진짜 돌과 모니터 속의 돌이 서로 연결되어 돌탑을 이루는 형국의 작품이다. 그는 고대부터 이 땅에 넘쳐나던 돌과, 당시로서의 최첨단 장비였던 TV 모니터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고대와 현대의 시간을 비약적으로 이었다. 그리고 그 장구한 시간 사이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믿음’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인간은 어떤 염원을 위해 그다지도 줄기차게 돌탑을 쌓아 왔는가. 우리가 의지하고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진짜 믿을 만한 것이란 존재하는가. 그냥 돌과 모니터 속 돌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이 둘은 과연 진정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돌은 말이 없다.

더러는 현대미술가의 이런 작품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믿음’의 영역인지라, 이것을 가치 있는 문제 제기라고 많은 이가 믿으면 그렇게 된다. 현재 박현기의 ‘TV 돌탑’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서울관 상설전에 전시되고 있다.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길 때 주변의 청계산 자락에서 구해온 돌들로 설치된 돌탑인데, 당시 미술관에서 3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작품이다. 그의 TV 돌탑 시리즈는 모마(MoMA)라고 불리는 뉴욕 근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도 들어가 있다. 마이산에서 출발해 뉴욕에 안착하여 뚱한 모습으로 관객들과 선문답을 하고 있을 상상을 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은 현대미술에 몰두할수록 고대를 떠올리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넓은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한국의 현대미술가들이 고대인의 삶과 함께한 돌을 현대미술의 화두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쩌면 ‘돌과 한국현대미술’을 주제로 전시를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한국 작가가 돌을 가지고 작업했다.

실제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 가면 돌 천지다. 이승택은 아예 마이산의 돌탑을 본뜬 거대한 돌탑을 세우고 제목을 ‘무제: 마이산에서’라고 붙였다. 작가 이우환 또한 녹슨 철판 주위에 적당하게 생긴 자연석 4개를 올려놓고 작품이라고 내놓았다. 사실 이 ‘적당하게’ 생긴 돌을 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 잘나도 안 되고 못나도 안 된다. 크기도 모양도 적당한 돌을 찾기 위해 산천을 헤매는 일이 작가 작업의 중요한 일부였다.

과천 돌무더기 중 단연 압권은 곽인식의 돌탑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데, 1986년 과천관이 처음 생길 때 일본에서 활동하던 작가가 한국에 머물며 쌓아 올린 작품이다. “죽기 전에 조금 더 높이 쌓아야 하는데, 조금 더 높이…” 하다가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작가는 1988년 작고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공덕을 쌓고 또 쌓아야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지는 걸까? 그 답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돌탑을 쌓는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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