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전유나 ‘너를 사랑하고도’
“딸깍하는 소켓의 스위치 돌리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갑자기 환해졌다.” 이문열의 소설 ‘변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변경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바뀐다는 뜻(變更)과 변두리 땅(邊境). JTBC ‘싱어게인 4’를 보다가 머릿속에서 갑자기 점화한 단어다. 이 사람들(심사위원 8명) 손에 의해 저 사람들(참가자 81명)은 ‘변경’(외곽)에서 중심(무대)으로 처지가 ‘변경’된다. 그러자 물음표가 이어진다. ‘무명가수전’(서브타이틀)인데 저 사람은 왜 나왔지? (심사위원 절반 정도가 인지하는 가수) 저 사람은 꽤 잘 부른 것 같은데 왜 불이 저거밖에 안 들어왔지? (백스테이지의 출연자 다수도 고개를 갸우뚱)
싱어게인은 이를테면 부활의 장이다. 가수가 다시 살아나고 노래가 다시 살아나고 추억이 다시 살아난다. 그만큼 열쇠를 쥔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할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살리느냐 마느냐. (쉰들러 리스트?) 골치도 아프고 마음도 아플 성싶다. 가창력은 방송 전(1차 예심)에 대체로 걸러진다. 그렇다면 감히 누가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느냐. 음악애호가들이 예측하다시피 누구는 이런 목소리를 좋아하고 누구는 이런 창법을 선호한다.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양식과 양심에 따라 심사하리라. 그 결과, 전문가 8명이 소켓 하나씩 부여받은 것이다. 누르느냐 안 누르느냐. 탁자의 불이 켜지는 건 결국 마음의 접속 여부다.
절박한 이들은 자신의 인생 노래를 들고나온다. 그들에게 노래는 삶의 전부일 수도 있다. 나는 50년 전의 프레디 머큐리를 소환한다. ‘돌려주오, 돌려주시오(Bring it back Bring it back) 그걸 빼앗지 마시오(Don’t take it away from me) 나한테 그게 어떤 의미인 줄 모르실 테니까(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me)’(퀸 ‘Love of My life’)
같은 해(1975) 대한민국에선 이런 노래가 탄생했다. ‘그냥 한번 불러보는 그 목소리에 다시 또 속아선 안 되지. 안 들려 안 들려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안 들려 안 들려’(송창식 ‘왜 불러’) 가수가 노래를 왜 부르는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일종의 우문현답이다.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주제가로 삼아도 좋을 만한 노래다.
4호 가수가 입장하는데 일순간 나를 1989년 12월 23일로 돌려놓고 말았다. 그날은 아마추어 스타 탄생의 날이었다. 나를 포함한 방송관계자에게 단연 눈길을 끌었던 출연자는 전유나(경성대)였다. 김완선과 동갑(1969년생)인 이 학생은 그날 저녁 열린 대학가요제(13회)에서 ‘사랑이라는 건’으로 무려 대상을 받았다. 참고로 그 전해(1988) 대상은 신해철(무한궤도)이었다. 대학가요제가 그야말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다. ‘우정의 무대’를 연출할 때 (매주 김완선을 부를 순 없으므로) 전유나를 초대했는데 그 당시 가요톱10에서 1, 2위를 다투던 노래를 애절하게 열창했다. 그리고 이번 ‘싱어게인 4’에서도 문제의 그 노래(‘너를 사랑하고도’)를 불러서 무참히 내 마음을 어질러놓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전구의 불은 단지 3개만 켜졌고 결국 그녀는 무명 가수에서 다시 (잊히는 과정의) 유명 가수로 ‘변경’되고 말았다. 이 프로의 규칙은 불이 3개 이하가 켜지면 성명을 밝히고 퇴장해야 한다. 속절없고 가차 없다.
77호 가수는 7개의 ‘어게인’을 받아서 2회전에 진출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송골매의 ‘모여라’. 신입 PD 시절 어린이연속극 ‘모여라 꿈동산’을 맡은 적이 있는데 주제가를 내가 작사 작곡해서 더 애착이 간다. 뉴스를 틀면 부동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부동산 대신 꿈동산을 찾아서 모인 친구들이 나는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이 노래를 전한다. ‘너의 마음을 이제 난 알아 (중략) 마지막까지 웃음을 보여줘’(전유나 ‘너를 사랑하고도’)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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