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부장

 

유럽 복지 모델 한때 선망 대상

코로나 뒤 빠르게 문제점 노출

신재생 에너지 정책 파탄 직전

 

복지병으로 가난한 나라 전락

李정부 철 지난 서유럽 지향성

포퓰리즘 덜한 방향 모색해야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다. 산업혁명과 함께 세계 역사를 쥐락펴락했고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에도 앞선 사회 시스템 구축으로 많은 부러움을 샀다. 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경제적 풍요가 유지되는 가운데 불평등이 덜하고 기본적 삶이 보장된다는 특징을 공유했다. 국가 역할이 제한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영미 모델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각종 문제점을 노출하며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여전히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 시스템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유럽연합(EU)의 맏형 격인 독일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2023년 경제성장률 -0.3%, 2024년 -0.2%로 두 해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고, 올해도 0%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침체 배경은 다층적이지만 러시아 에너지 의존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는 원자력 발전 중단과도 연관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공식 선언했으며, 이후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 17기를 모두 폐쇄하고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등 에너지 전환을 추진한 바 있기 때문이다.

‘RE100’은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때문에 유명해졌다. RE100이란 영국의 클라이밋이 주도하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전부를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RE100은 기후변화 대응과 탈원전을 중시하는 유럽의 사회적 흐름 속에서 나왔고 이재명 정부는 이를 여전히 신봉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탈원전주의자로 알려진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자신은 “탈원전주의자가 아니라 탈탄소주의자”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가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국가 에너지 대전환의 핵심’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은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이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정작 EU는 지난 2019년 ‘유럽 그린딜 제정’을 통해 ‘탈원전 중심 정책’에서 원전을 포함한 ‘탈탄소 중심 에너지 전략’으로 궤도 수정을 완료했는데도 말이다.

최근 연금 등 과도한 복지 지출로 재정 위기를 겪는 프랑스 사례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프랑스 국가채무는 2025년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1%에 달한다. 만성 재정적자도 문제다. 2024년 프랑스 재정적자는 GDP 대비 -5.8%로 EU 권장 수준(-3.0%)을 크게 초과했다.

한국의 국가채무(D1)는 2024년 기준 1175조 원으로 GDP 대비 46.1%로 프랑스의 절반 이하다. 관리재정수지(2024년 GDP 대비 -4.1%)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긴 하다. 다만, 안심하긴 이르다. 한국의 국가채무 속도는 최근 수년간 상대적으로 무섭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00조 원대에 진입했고 2023∼2024년에는 1100조 원대를 거쳐 올해 1300조 원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올 한 해에만 해도 국가채무가 126조 원 증가해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꽁꽁 얼어붙은 내수 진작을 위해 확대 재정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국민 소비 쿠폰 남발이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의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복지 정책은 프랑스 등 유럽 복지국가 모델과 일정 부분 연계성을 지닌다. 재정 위기 속 국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권리를 추구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이지만, 복지에 좀 더 중독되면 우리는 더한 일도 할지 모른다.

벤치마킹 대상이 마땅치 않은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이럴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복리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복지를 늘리는 건 맞지만, 달콤한 포퓰리즘에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일변도 정책 역시 그레타 툰베리의 동화책에나 나오는 덜 현실적인 얘기다. 왜 유럽 국가들이 최근 정책을 선회, 원전을 앞다퉈 도입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유럽 복지국가의 쇠락을 보면서 한국형 모델 모색에 집중해야 한다.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기자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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