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재정법은 지방채 발행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재정투자사업, 재해 예방 및 복구, 천재지변 대응, 지방채 차환 등이다. 그러지 않아도 부실한 지방재정의 파탄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여야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안 70여 건을 무더기 처리하면서 기존 요건을 무력화(無力化)할 정도로 완화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비쿠폰 발행에 따른 지자체 부담을 떠넘기는 미봉책 성격이지만,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등 후유증이 우려된다.
지방재정법 개정안은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예측할 수 없었던 세입 결함 보전’(제11조 3항)을 ‘천재지변이나 그 밖에 사전에 예측할 수 없었던 긴급한 재정 수요에 필요한 경비의 충당’으로 넓혔다. 당초 천재지변을 전제로 했던 조항인데, 사전에 편성되지 않은 모든 경비로 무한 확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다. 법률의 명료성 원칙에서도 어긋날 정도여서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등이 짬짜미하면 마구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다. 이런 입법이 이뤄진 배경에 소비쿠폰 문제가 있다. 올해 정부와 지자체가 소비쿠폰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13조 원에 달한다. 서울시는 9월 통과한 1조7999억 원 규모의 추경 중 무려 83%를 소비쿠폰에 배정했다. 소비쿠폰은 본래 지방채로 충당할 수 없는 항목이지만 일부 지자체는 다른 사업비를 전용한 뒤 지방채를 발행하는 ‘예산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이번 법 개정은 이런 편법에 제도적 면죄부를 준 것과 같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2022년 45.34%에서 2025년 43.18%로 4년 연속 하락했다. 243개 지자체 중 자립도 50%를 넘는 곳은 7곳뿐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발행 한도와 채무비율 기준 등 안전장치를 강조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지방재정을 악화시키고, 필수 복지와 인프라 투자를 위축시키며, 부담을 미래세대에 떠넘길 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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