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무의 Deep Read - 10·15부동산대책
“규제로 집값 잡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자기부정… 주택은 ‘거주’뿐 아니라 ‘투자’의 대상
전월세 상승으로 청장년 임차가구 거주 기회 박탈…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공급대책 절실
이재명 정부의 10·15부동산대책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선을 넘는 수준이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거듭 밝혀온 “규제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했던 발언에 대한 자기부정이다. 이 정부는 역대 민주당 정권이 섣부른 규제로 시장을 잘못 다룸으로써 시장의 반격을 받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형국이다.
◇불편한 이중성
10·15부동산대책의 주요 내용은 규제지역의 광역적인 지정, 고가 아파트 시장과 갭투자가 표적이 되는 다양한 대출 규제 강화 등이다. 가장 논란을 야기한 선택은 기존의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얹어 만든 ‘3중 규제지역’을 서울 25개 구 전역과 경기도 12개 시를 포함하는 초대형 권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대책 발표 이후 2주 가까이 지난 지점에서 겪은 혼란은 심각한 수준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의 확대 지정 이전에 거래를 끝내려는 매수자·매도자들로 아비규환에 가까운 상황을 연출했다. 지난 2022년 고금리로 인해 폭락한 후 아직도 상승세로 전환하지 못한 서울시 노동강(노원·도봉·강북)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를 포함하는 서울시내 15개 자치구 구청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갭투자 논란으로 끝내 사퇴한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차관의 “돈을 모아 집을 사라”는 발언은 민심의 분노와 역풍을 불렀다. 돈 벌기 전에는 아파트 살 생각 말라는 발언과 다름없다. 이 전 차관 사태는 일부 공직자들이 지닌 부동산 인식의 불편한 이중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안이었다.
갭투자가 죄악시되고 있지만, 누군가의 갭투자는 누군가에게 안정된 전세주택을 제공한다. 내가 갭투자된 2주택자를 면하려면 두 채의 전세가 빠지는 거래의 연쇄고리가 내 집까지 연결돼야 한다. 가격이 안정될 때 집을 사라고 하지만, 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들면 지금 집을 사는 것보다는 전세를 사는 것이 유리한 선택이다. 오르기 때문에 사려고 덤비게 된다.
주택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당위적 가치관을 강요하면서 주거이동과 거래의 연쇄고리가 얽혀 돌아가는 시장을 잘못 다루면 강력한 시장의 반격을 겪을 수밖에 없다.
◇거주와 투자
효과적인 정책은 주택을 ‘거주’뿐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정상임을 인정하고, 그 힘을 부정하지 말고 주택 공급을 만들어내도록 원활하게 연결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규제 강화의 배면에는 이 대통령과 주요 경제 관료들의 서울 등 수도권 주택가격이 과도하게 높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소득대비주택가격비율(PIR)이 타 국가, 타 도시에 비해 높음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국제 비교를 위해 실거래가를 기반으로 하고 경제활동의 공간단위인 도시권을 비교단위로 하는 등 필요조건을 맞춰 비교해보면 평균적인 의미에서 수도권 PIR이 과도하게 높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물론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집착으로 형성된 상위 주택유형인 아파트의 국지적 가격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경쟁적인 해외 대도시권의 최상위 주거지 주택가격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예컨대 한국이 뉴욕의 PIR이라고 인용하는 정보는 2000만 명 가까운 인구를 포괄하는 뉴욕 대도시권의 PIR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2023년 통계(국제적 초저금리로 인한 고점을 반영하는 시점)를 인용하면 7 정도이고, 로스앤젤레스 대도시권은 11 수준이다. PIR 산정은 하나의 도시권을 모두 포괄해야 의미가 있으나 굳이 뉴욕대도시권의 중심도시인 800만 인구의 뉴욕시만 따로 떼어내 산정하면 11 정도이고, 로스앤젤레스시는 14 수준에 육박한다. 한국은 수도권이 7, 서울이 12가량이다.
서울시의 평균적인 주택가격이 과도하게 높다는 믿음, 그리고 중계되듯 발표되는 주간 아파트 가격변동률에 놀란 다급함이 결합돼 정책적 선택의 악수가 나온다. 이번 10·15대책 역시 당국이 규제 강화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버린 결과로 나왔다.
◇부동산 공급대책
풍선효과가 일차적인 규제지역의 상대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 발생하는 부수효과라는 점을 수용한다면 풍선효과를 막는 것이 규제의 일차적 목표일 수는 없다. 풍선효과를 동반해서라도 쌓인 압력을 빼지 못하는 경우, 그 압력으로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심히 우려된다.
서울 노원구나 수원·광명 등지가 강남이나 한강벨트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면 서울 선호 지역의 집값 안정은 더욱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풍선효과를 막자고 덤벼들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의 강도나 파급속도를 완만하게 관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서울과 경기도 일부를 포함해 전 국민의 3분의 1이 거주하는 지역에 전면 적용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의 후폭풍은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갭투자를 방지해 투기적인 구매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이지만, 이 대책은 갭투자만 막는 것이 아니라 전월세 공급 물량 자체를 축소시킨다. 이는 전월세 상승이라는 부작용은 기본이고, 도심 접근성을 누리며 줄인 출퇴근 시간을 육아와 자기계발에 쓰고 싶어 하는 청장년 임차 가구의 거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초광역적인 확대가 가격 안정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3·24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이후 3개월간의 주간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로 살펴본 상승률은 대상 지역인 강남3구가 6%에 달했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최상위 상승률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주택시장 불안 해결을 위해 취해야 할 최우선적인 방안은 수도권에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 즉 공급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이른 시일 안에 체감할 수 있는 과실을 얻으려면, 재건축·재개발 구역 지정 확대보다는 기지정 구역의 인허가부터 준공까지의 기간을 가속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용감한 수습책
이번 10·15대책의 부작용은 앞으로 수개월 안에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용감한 수습책은 규제 조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며, 그게 힘들다면 최대한의 축소 조정이 있어야 한다. 서울지역 정비사업 진행을 가속화해 공급 확대를 실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건축부담금 폐지가 고려돼야 한다.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기부채납 등 ‘도시축소기’에 대응하는 개발이익 환수 강도를 순화 조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 아시아부동산학회장
■ 용어 설명
‘10·15부동산대책’의 주요 내용은 △고강도 규제지역 및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등.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인데, 거래량이 떨어지면서 전세난 부작용 등이 나타남.
‘PIR’소득대비주택가격비율은 주택가격을 가구당 연소득으로 나눈 값. 몇 년치 소득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PIR=5라면 소득을 쓰지 않고 5년간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
■ 세줄 요약
불편한 이중성: 고강도 규제를 특징으로 하는 10·15부동산대책은 “규제로 집값 잡지 않겠다”던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발언에 대한 자기부정. 이상경 사태는 공직자들이 지닌 부동산 인식의 불편한 이중성이 드러난 사안.
거주와 투자: 주택은 ‘거주’뿐 아니라 ‘투자’의 대상. 이재명 정부는 주택가격이 과도하게 높다는 믿음 속에서 성급하게 정책적 악수를 둠으로써, 역대 진보 정부가 벌여온 규제 강화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
용감한 수습책: 이번 대책으로 전월세 공급 물량이 축소되면서 청장년 임차 가구의 거주 기회가 박탈됨. 가장 용감한 수습책은 규제 조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며, 정비사업 진행을 가속화해 공급 확대를 실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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