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유선전화기를 쓰는 집이 있나 모르겠다. 지금 우리 몸의 일부가 된 스마트폰도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기술 발전의 속도만큼 명멸의 속도도 숨 가쁘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 있다. 차사발이다. 아니 더 많이 필요하다. 우리 삶이 날로 치열해지고 황량해질수록 차는 더 필요하다.
동시대인의 일상에서 차는 시작이자 매개가 되며, 심미적 종지부가 되기도 한다. 도예가 양경식이 ‘천 개의 사발’을 만들고 있는 동기이기도 하다. 이는 ‘예’나 ‘도’로 양식화된 고급 취향보다는 일상에서 편하게 쓰이는 막사발의 DNA를 지니고 있다. ‘천 개의 고원’(들뢰즈-가타리)에서 영감을 받은 바다.
작은 사발의 표면에서 시각과 촉각의 감흥이 묻어난다. 백조형토 성형에 유백색 시유, 검붉은 철사(鐵砂) 필치의 조화가 상호작용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환원소성과 ‘가마 속 마술’ 같은 요변(窯變)이 자아낸 운치는 음미할수록 그윽하다. 운정무한(雲情無限). 구름에 담은 마음은 끝이 없구나.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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