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범 산업부 차장

“미국은 ‘996’으로 주 72시간, 한국은 964.5로 주 36시간.”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중심으로 996 근무가 늘고 있다고 한다. 996 근무는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9시 퇴근, 그렇게 주 6일을 근무하는 것이다. 2010년대 중국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강조했던 근무 행태지만, 살인적인 노동 강도 탓에 중국 정부마저 이를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속속 ‘996 근무’를 내세우며 고강도 근무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는 ‘주 6일, 주 70시간 근무를 버티지 못하는 지원자는 적합하지 않다’는 채용 공고까지 공공연하게 냈다고 한다. 한국이었으면 즉각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주 4.5일제 근무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24일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출범시키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노동계·경영계 및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TF는 근로시간 단축 관련 과제를 집중 검토해 올해 말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주 4.5일제 도입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경영계는 노심초사다. 지금도 선진국 대비 노동생산성이 뒤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24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15일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한 ‘노동생산성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로 미국(83.6달러), 독일(83.3달러) 대비 각각 61.1%, 6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지금도 주요국에 뒤처지는데, 근무시간마저 줄면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위원회 초청으로 ‘새 정부 주요 고용 노동정책 방향’을 설명하러 대한상의를 찾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에게 경영계는 주 4.5일제 도입 이전에 근무시간 유연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근무시간 유연화는 현재 주 단위로 52시간 범위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산정 기준을, 월·분기·반기 단위 등으로 유연화하자는 것이다.

벤처기업협회가 지난 8월 19∼26일 벤처기업 재직자 2141명을 대상으로 ‘벤처기업 재직자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은 충분한 보상이 제공된다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0.2%는 ‘매우 가능하다’, 40.2%는 ‘어느 정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전략·기획 직무 분야에서는 81.2%, 연구·개발(R&D) 직무 분야는 80.0%나 됐다. 경영계는 주 4.5일제 도입을 시한을 정해두고 서두르기보다 꼼꼼히 한국 근로 현장에 맞는 생산성 향상 방안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가뜩이나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번의 실기(失期)로 산업이 망가지는 일은 다반사다. 산업이 망가지면 일하고 싶어도, 주 4.5일도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일을 더 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일할 수 있는 자유는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

장석범 산업부 차장
장석범 산업부 차장
장석범 기자
장석범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2
  • 슬퍼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