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 KAIST 교수·IT경영학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CEO 서밋이 29일 경주에서 개막됐다. 이번 행사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회원국 정상들과 국내 5대 그룹 등 주요 기업 대표들 및 글로벌 CEO들이 대거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번 에이펙 CEO 서밋의 주제는 ‘3B’이다. 불안정한 글로벌 공급망과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하고(Bridge), 인공지능(AI)과 같은 혁신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Business),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하자(Beyond)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개막 연설에서 에이펙 국가 간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 혁신과 성장의 원동력으로 AI를 제시했다. 특히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 구상은 눈길을 끈다. AI는 이미 개인과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격차를 낳고 있다. AI를 잘 활용하는 개인과 그렇지 못한 개인 간 생산성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은 AI로 성과를 극대화하고, 중간층은 사라지며, 역량이 부족한 사람은 AI로 대체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그것이 AI가 지닌 구조적 속성이다.

AI가 발전하면 할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이라는 비전은 단순히 접근권을 넓힌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 전략이 돼야 한다. 정부는 AI의 윤리성과 알고리즘 편향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함과 동시에, 발전 과정에서 발생할 유휴 인력과 소외계층 문제에 정책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체되는 인간’이 아니라, ‘함께 진화하는 인간’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AI를 범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AI는 우리의 다양한 사회·경제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혁신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PC·인터넷·모바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이 있다. 정부가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AI 산업 육성을 천명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다만, AI 산업의 진정한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기술 개발과 현실적 적용의 주체는 언제나 기업이며,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창의적 실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에이펙 CEO 서밋에서의 트럼프 대통령 연설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는 외국 기업과 자본이 미국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한 ‘새 규제를 1개 만들 때마다 기존 규제 10개를 없애라’는 원칙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 많은 기업이 복잡한 규제 속에서 신사업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버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는 철저히 유지하되, 나머지 규제는 포지티브 아닌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즉, 금지된 것 외에는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AI 산업은 속도와 실험이 생명이다.

규제 혁파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현상 유지, 보신주의, 규제 만능주의를 깨는 것이 관건이다. 혁신보다 규제가 앞서면 AI 신산업의 미래는 없다.

안재현 KAIST 교수·IT경영학
안재현 KAIST 교수·IT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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