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前 駐유엔 대사

 

한미-미중-한중 연쇄 정상회담

격랑 거셀수록 중심잡기 중요

북·중·러 착시 탈피가 급선무

 

러시아의 北 지원은 적대행위

中과 실용외교 더 정교해져야

희망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내일부터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이 계기에 이재명 대통령의 미중 정상들과의 회담, 미중 정상회담과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깜짝 회동 가능성 등 우리 안보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 행사들이 관심을 끈다. 최근 북중러 군사 밀착, 한미 관세 협상, 중국의 희토류 통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여러 한미동맹 의제 등이 엉켜 국민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런 격랑 속에서 정부는 방향타를 잘 잡고 정체성을 지키며 주변 강대국과 올바른 관계 설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외교안보 정책의 만성적 문제 중 하나로 정권교체 때마다 나타나는 정체성 혼란 와중의 착시현상이 재발했다.

우선, 북한 착시다. 정부 일각에서, 선의에 기반한 대북 교류 계획 속에 북한의 두 국가 입장을 수용해 적당히 구슬리면 남북 대화와 신뢰 구축, 그리고 궁극적 평화통일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는데 이는 과거 실패를 답습하는 위험한 착시다. 헌법과 남북기본합의서 위배라는 법적 측면과 함께 과거 70년간 남북 대치 과정, 30년간의 핵 포기 설득 실패 경험에 비춰 보면 모순에 가득 찬 북한 정권은 설복이 아니라 확실한 압도의 대상이다.

최근 평양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 극초음속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공개와 김정은의 호전적·적대적 발언을 보면 북한 정권이 우리의 주적(主敵)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그렇다면 설득을 통한 화해가 불가능한 말종 집단과의 대화는 전략적 차원에서 상당 기간 우선순위 아래로 내려놓고 우리 나름의 긴 호흡으로 자강과 동맹, 국제 공조의 삼중 동심원 전략을 강화해가는 게 현명하다. 북한의 왕따 신세는 국제사회가 내린 보편적 낙인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이 있다고 벗어나는 게 아니다.

러시아 착시도 문제다. 해방 이후 소련의 한반도 영향력과 향후 통일 과정에서의 역할을 고려해 러시아는 2008년까지 북핵 협상 6자회담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 후 지난해 6월 북한과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북한 병력의 러-우 전쟁 파견을 대가로 신무기 기술을 이전하며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와해시키는 뒷배 역할을 하고 있음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 위해로, 명백한 적대행위다. 한러 관계의 현주소는 2008년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된 때와는 정반대 편에 와 있다. 이제는 양국 관계의 잠재력과 상호 보완성이라는 모호한 수사의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과 패권 경쟁 중인 중국과의 까다로운 지정학적 딜레마도 과제다. 지난 정부가 미국에 과도하게 기울면서 중국을 경시했다는 인식 속에 현 정부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로 중국에 다가가는 자세를 취한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막강한 중국이 오히려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집요한 시도를 하면서 서해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현실 대처에 대해서는 실용적인 정교한 전략이 없다. 이는 현 정부를 친중 좌파로 보며 김정은과의 만남 성사에 안달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가 한미동맹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원인이며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이런 착시와 딜레마 와중에 우리 외교안보팀은 과거 소환 식의 ‘자주파’와 ‘동맹파’ 간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벌이고 있다. 사실상 적을 앞에 두고 ‘우리민족끼리파’가 ‘동맹국제파’를 공격하며 아군에게 오인사격을 함으로써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대로 ‘강자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사악한 약자가 대담함을 무기로 힘을 키우는’ 상황을 우리 스스로 조장해 주는 셈이다.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다. 통일부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법적·현실적·전략적 측면에서 시대착오적 맹목이며 김정은 스토킹이다.

APEC 정상회의로 이재명 정부가 보여주는 외교력 수준은 향후 국정 동력에 영향을 주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능력 인식의 척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혼미 상황을 조속히 정리하고 관세 협상 종결 후 머잖아 닥칠,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동맹 현대화, 한미일 안보 협력, 북한 핵·미사일 대응 등 냉정한 하드볼 게임(냉혹한 협상)의 의제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김숙 前 駐유엔 대사
김숙 前 駐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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