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식량의 미래│남재작 지음│김영사
韓농업 시설 1960년대 머물러
‘소농다수체계’ 탓에 쌀값 비싸
세계는 규모화·기술 도입으로
생산성 올리고 경지 면적 확장
“정부, 소득보전형 지원 벗어나
혁신 생태계 촉진자 역할 해야”
최근 경제 유튜버 슈카가 운영한 팝업 빵집이 화제가 됐다. 각종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가장 눈길을 끈 건 무엇보다 소금빵의 가격이었다. 단돈 ‘990원’. 고물가와 이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실제로 한국은 빵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다. 빵값만 그러할까. 사과, 바나나, 감자 가격은 세계에서 1위, 소고기와 양파, 쌀은 2위다. 식료품 영역에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고물가 국가다.
농학자이자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인 저자는 이런 상황을 이미 경고했다. 전작 ‘식량위기 대한민국’에서 기후위기와 공급망 붕괴 위험을 지적하며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이번 책에서 “한국 농업이 구조적 위기에 들어섰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세계적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유독 한국의 농수산품 가격이 급등하는 이유도 농업 구조에 있다. 기후위기, 글로벌 공급망 충돌, 전쟁, 기술 격차, 사회 불평등이 겹치며 취약한 시스템은 다시금 우리 사회를 ‘먹을 걱정’에 빠지게 한다.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는 시대에 식량위기가 낯설 수 있다. 생존의 문제였던 ‘먹는 일’은 어느새 소비행위가 되었고, 식량은 생태계가 아닌 ‘시장’의 문제가 됐다. 그러나 문제는 식량이 시장화됐다는 점이다. 한국 농업은 세계 시장에서 ‘섬’이다.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데다, 1960년대 새마을운동과 통일벼 보급으로 대표되는 녹색혁명 이후 기반 시설 개선이 멈췄다. 스마트 농업이라는 포장 뒤에는 취약한 구조가 있다. 한국의 취약성은 숫자로 드러난다. 2022년 식량 가용성은 113개국 중 11위였지만 경제성은 51위, 품질 및 안정성은 50위였다. 즉, 식량은 충분히 있지만 비싸고 제때 접근하기 어려운 나라다. 하위 20% 가구가 소득의 40% 이상을 식비로 쓰는 현실은 국제 기준으로 ‘식량 위기’ 단계다.
흔히 제시되는 해법이 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자.” 하지만 저자는 수십 년간 반복된 이 구호를 반박한다. 자급률을 높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많다. 식량자급률은 주로 곡물 자급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곡물은 단위면적당 수익성이 가장 낮은 작물이다. 같은 땅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키우면 훨씬 높은 수익을 얻는 상황에서 곡물만 재배하라는 요구는 농가 입장에선 선택할 이유가 없다. “식량안보는 자급률이 아닌 공급망의 문제”라는 지적은 뼈아프다. 한국 농업정책은 여전히 ‘농가 보호’와 ‘자급률’ 중심이지만, 세계는 이미 공급망 경쟁으로 넘어갔다. 세계는 이미 국가 단위 자급이 아니라, 유연한 국제 조달 시스템으로 식량안보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뒤늦게 농지 통합과 대형 경영체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공급망과 함께 가장 시급히 바꿔야 할 것은 생산구조다. 국내 농산물이 비싼 핵심 이유도 유통보다는 ‘소규모·고령화된 생산구조’ 때문이다. 소농 다수 체계에서는 수확·포장·운송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복잡한 유통구조는 소규모 생산구조의 ‘결과’에 가깝다. 한국의 농가당 경작 면적은 1980년 이후 40년 동안 고작 0.5㏊ 늘었다. 한국 농가의 70%가 1㏊ 미만 농지를 소유하고, 농업소득은 여전히 도시와 큰 격차를 보인다. 반면 세계 농업 강국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브라질은 규모화와 기술 도입으로 생산성의 절반 이상을 끌어올렸고, 유럽은 1962년 공동농업정책(CAP) 이후 평균 경지 면적을 2~5배 확장했다. 네덜란드 41㏊, 독일 61㏊, 프랑스 45㏊, 덴마크 83㏊. 세계는 농업을 경영체가 이끄는 산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규모화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저자는 “한국 농업은 지난 30년간 정부 중심의 소득보전형 농업에 머물렀다”고 지적한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원에도 농가 경쟁력은 약화했고, 청년 농업인 진입은 더 어려워졌다. 종자·기술·장비까지 공공이 제공하면서 민간 혁신의 토양이 사라졌다. 1960년대 보급된 ‘통일벼’가 대표적인 예다. 벼 품종의 개발과 보급은 국가의 몫이었고 이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이끌었다. 다만 공공 주도의 종자사업은 민간기업의 성장과 기술 혁신을 제약하는 구조를 낳았다. 귀농 정책 역시 성장보다는 ‘의존’을 만들었다. 농민들은 더 이상 시장에서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이제 정부의 역할은 현금을 나눠주는 후원자가 아니라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촉진자’여야 한다.
약 200년 전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식량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인류가 굶주릴 것이라 경고했다. 세계는 그의 예언을 한 번 이겨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무역 갈등은 다시 한 번 맬서스의 예언을 소환했다. 사과와 상추값이 오를 때마다 ‘금 사과’ ‘금 상추’와 같은 말이 유행한다. 오늘은 어디에 ‘금’이 붙을지 알 수가 없다. 가격 폭등은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가 아닌 시대다. 맬서스의 예언이 실현된다면, 그 최전선에 한국이 서 있을 것은 자명하다. 476쪽, 2만4000원.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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