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내 마음이 편한 곳으로│메 글·그림│길벗어린이
가을이 깊어져 간다. 옷장을 열어 가지고 있는 옷 전부를 꺼냈다. 125벌 중 49벌을 정리했하고 76벌을 남겼다.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 내고 그날 밤 어찌나 달게 잤는지. 남은 가을에 얼마나 더 많은 물건을 비울 수 있을까? 책장을 비우고 또 비워서 단 한 권의 그림책을 남겨야 한다면 ‘내 마음이 편한 곳으로’를 고르겠다.
로미의 집은 가구와 살림살이를 한눈에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단정하고 정갈하다. 작은 창으로 아침 햇살이 든다.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오늘 로미는 초대를 받았다. 잠자리를 정돈하고 옷을 걸친다. 울타리 너머 토마에게 인사하고 꽃과 풀을 살핀다. 채비를 마친 로미가 몇 걸음 멀어지자 집은 점점 줄어들더니 작은 가방이 된다.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순간이다.
목적지는 ‘마음이 편한 곳’이다. 로미는 서두르는 법 없이 주변을 살뜰히 살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그러면서 도중에 만난 친구들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눈다. 배고픈 친구들에게 음식을, 보금자리가 필요한 새들에게 아끼던 시계와 챙모자를 건넨다. 가벼워진 가방만큼 로미의 마음도 한결 가뿐해진다.
잠시 쉬어 가는 때도 있다. 기대어 앉아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에게 옷을 입힌다. 그럴 수 있다면 로미는 보이지 않는 외로운 마음까지 포근히 안아 주고 싶다. 부드러운 갈색 털을 가진 말 토마는 그런 로미의 여정을 내내 함께한다. 여행의 끝에 이른 로미는 토마를 끌어안는다. “안녕, 나의 토마. 내 곁을 지켜 줘서 고마워.”
어느새 비는 그치고 환한 빛만이 로미가 있던 자리를 비춘다. 제목처럼 ‘마음이 편한 곳’으로 로미는 떠나고 없다. 하지만 그에게서 소중한 마음을 전해받은 토마와 친구들이 여전히 로미를 기억한다. 온기가 가득한 이 책 속에서 세 번의 펼침 페이지마다 속도를 늦추어 그림에 오래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58쪽, 1만6000원.
남지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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