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前 외교부 북핵대사
이번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과 그에 앞서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으로, 그간 한반도 안보와 한미 관계의 미래를 극도로 불투명하게 했던 짙은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고 있다. 그중 일부는 마무리 단계이고 일부는 아직 진행형이며 일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전반적인 대세는 긍정적이다. 물론 예측 불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이 언제 다시 바뀔지 모르고 중국이 한미 관계 진전을 막으려 무슨 훼방을 놓을지도 모르나, 일단 큰 방향은 대체로 정해진 듯하다.
첫째, 아직 일부 이견이 남은 듯하나 한미 관세 협상이 우리 정부 발표대로 마무리된다면, 만족스럽지는 못할지라도 양국 관계와 한국 경제의 파국은 피할 수 있을 만한 합의가 될 듯하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매년 200억 달러씩 10년간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는 일이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 대상을 잘 선정해 현명하게 운용한다면 한국 경제의 진정한 글로벌화를 이룸과 동시에 양국의 경제적 결속은 물론 동맹 관계까지 한 차원 격상하는 귀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에 앞서 도쿄에서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이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에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도 재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이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기존 목표를 포기하고 핵 보유를 묵인할 듯한 언행으로 많은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요구를 포기해야 미국과의 정상회담 재개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이 문제는 향후 트럼프-김정은 회담 속개 여부와도 직결된다.
셋째, 한미동맹의 미래에 관한 협상은 아직 시작 단계로 추정되나,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국방비의 대폭 증액에 동의하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만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재정 부담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가능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상호주의적 운용 차원에서 미국이 제기하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등 대중(對中) 전선 동참 과제는 현 정부의 대중 시각에 비춰볼 때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넷째, 한국이 정상회담에서 요청한 핵 추진 잠수함용 연료 제공과 핵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허용 문제는 구체적 협의가 개시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이다. 그러나 이는 군사용 핵 기술과 핵확산금지 측면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이고 한국의 대미·대중·대북 정책과도 연관된 고도의 정치적 사안인 만큼, 최종 협상 타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합의에 성공하더라도 많은 조건과 제한으로 묶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한미 관계의 핵심 쟁점들이 긍정적 진전을 보이는 점은 고무적이나,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다른 외부적 장애물도 남아 있다. 제로섬의 게임룰이 적용되는 미·중 패권 대결의 세계에서 한미 관계 진전은 한중 관계에 부정적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중국이 이에 대해 어떻게 나오느냐가 큰 관심사다. 내일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지만, 중국과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들에 대한 이율배반적 대처로 행여 한미 관계가 다시 꼬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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