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대기 불안정 땐 별빛 흔들려
천체 관측하는 데 큰 어려움
요즘엔 웹망원경 등 이용해
대기 영향 없이 데이터 얻어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도
최첨단 기술로 낭만 되살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이 쓴 ‘서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어쩌면 윤동주 시인 자신이 이 시에 나오는 별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괴로워하고 성찰하지만, 이내 자신의 빛을 다시 찾는 그런 ‘별’ 말이다.
윤동주는 만주의 북간도에 위치한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고종사촌 송몽규, 외사촌 문익환, 김정우와 함께 명동 소학교에 다녔다. 송몽규는 훗날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를 다녔고, 일본으로 같이 유학을 간다. 두 사람은 일본 감옥에서 죽음을 같이 마주한 평생의 친구이기도 하다. 문익환은 나중에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는 인물이다. 김정우는 서울로 피란 온 숭실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윤동주는 이들과 함께 명동 소학교를 마치고 함께 은진중학교에 진학했다. 이어서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한다. 윤동주는 먼저 와 있던 문익환의 추천으로 숭실중학교에 편입하자마자 교지 ‘숭실활천’의 편집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윤동주는 명동 소학교 시절에는 송몽규와 함께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등사해서 만든 전력이 있다. 은진중학교에서도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등사 잡지를 발간했다. 윤동주는 숭실중학교 교지 ‘숭실활천’ 편집부에서 활동하면서 여기에 ‘공상’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윤동주의 시 중에서 처음으로 활자화된 시로 알려져 있다.
나도 숭실고등학교에 다녔다. 문예부 활동을 했고 ‘숭실 문학동인회 활천’을 만들었으며 동인지 ‘활천’도 발간했다. 말하자면 윤동주의 문학적 직속 후배인 셈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윤동주의 외사촌인 김정우가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 선생님은 문학동인회 활천의 고문을 맡아주셨는데, 문학동인지 이름을 ‘활천’으로 제안하신 것도 당신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김 선생님을 통해서 윤동주의 명동 소학교와 은진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숭실고등학교 교장이었던 김창걸은 윤동주와 숭실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문학동인지 ‘활천’에 축사도 직접 써주시고 만날 때마다 숭실중학교 시절의 윤동주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윤동주와 직접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로부터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자산이라 하겠다. 윤동주가 다녔던 연희전문학교가 이어진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윤동주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윤동주가 살았던 기숙사 건물 바로 앞에 놓인 윤동주 시비(詩碑)는 대학 시절 내내 나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천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구절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 어떤 날은 별들이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고요히 빛을 내보내지만, 또 어떤 날은 반짝이면서 별빛이 요동치기도 한다. 밤하늘의 별이 순간적으로 반짝반짝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지구의 대기 때문이다. 지구의 대기 덕분에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우주선이나 자외선의 일부가 차단된다. 대기가 복사열을 일정 시간 동안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해서 지구의 온도가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다. 지구의 대기는 생명체의 보호막이다.
그런데 천문학자에게 대기는 별로부터 오는 빛을 흡수하거나 교란하는 방해 요소다. 별로부터 오는 빛 중 일부는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면서 흡수되거나 반사된다. 별로부터 오는 정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천문학 관측에는 치명적인 문제다. 대기가 안정된 날에는 별이 고요하게 빛난다. 대기가 불안정한 날은 대기의 움직임이 심해서 대기를 통과하는 별빛도 흔들리게 된다. 별빛이 닿는 지점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별이 바람에 스쳐서’ 반짝이는 날은 천문학자가 별을 관측하기에 좋지 않은 날이다.
대기의 효과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관측하는 것이다. 요즘 활약하고 있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대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또렷하게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문제는 비용과 기술이다. 지상에 망원경을 설치하는 것에 비해 더 큰 비용과 더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지상에는 상대적으로 큰 망원경을 더 싼 비용으로 설치할 수 있다.
관건은 대기에 의한 별빛의 흔들림을 극복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관측하는 별 근처의 하늘에 레이저를 쏘고 반사되어 돌아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대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런 다음 대기의 실시간 움직임에 맞춰서 망원경의 반사경 자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흔들리는 별빛을 따라서 실시간으로 망원경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별빛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천문학자들은 지상에서 별빛의 흔들림을 보정하고 정밀한 관측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을 적응광학이라고 한다.
윤동주의 ‘서시’의 마지막 구절인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대할 때면 한동안 별빛이 흔들리고 반짝이는 밤하늘을 생각하면서, 그런 날이면 천문학자가 얼마나 안타까워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흔들리는 별빛을 보정하는 적응광학 기술 덕분에 이제 바람에 스쳐서 반짝이는 별빛을 정서적 낭만이 충만한 마음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때로는 낭만을 회복시켜 주기도 한다.
바람에 스치는 별빛을 바라보며 마음의 공감을 하면서, 정밀한 별빛 데이터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기술로 확대된 감각과 낭만을 마음껏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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