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경제·기술 복합 동맹 확장해야 한다

삼권분립 파괴와 정치 타락 용납 말아야

AI 大戰 가속화… 더 중요해진 親기업 혁신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나가면서 미·중 패권 경쟁을 축으로 한 국제 정세의 변화 속도도, 인공지능(AI) 혁명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진보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국내에선 이재명 정부,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직전 행정부와는 크게 다른 정책을 추구하면서 체감 변화는 더욱 어지럽다. 문화일보 창간 34주년(11월 1일)을 전후한 지금도 경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중·일 등 주요 참가국들이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설계하고 있다. 이런 세계사적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인가, 격랑을 도약의 에너지로 삼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는, 한국의 번영을 견인했던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식 미국 우선주의 압박 속에서 6·25 전장에서 맺어진 한미동맹도 대전환기를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했던 기존의 동맹 구조를 동맹 현대화란 이름으로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개혁하려고 한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29일 정상회담은 시의적절했다. ‘원자력(핵 추진) 잠수함을 한국이 건조하도록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원자력협정 등 각론에서 견해 차이가 없지 않겠지만 ‘핵동맹’으로 진화하는 첫걸음이다. 북핵 능력을 고려하면 더 절박한 과제다. 미국의 세계 평화 유지 비용을 분담하며 안보·경제·기술 복합 동맹으로 확장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미는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원전·우주 동맹을 구축한 데 이어 이번에 AI, 양자역학 등 과학기술 MOU도 맺었다. 미국 기술과 한국 제조업의 융합은 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공급망과 체제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보다 더 중요하고 근원적이며 오래 지속될 경쟁이 과학기술 전쟁이다. 그 한가운데에 국가 경쟁으로 비화한 AI 전쟁이 있다. 이번 APEC CEO 서밋에 집결한 글로벌 기업 CEO 1700명이 AI·디지털 전환에 머리를 맞댄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빅테크들도 AI 동맹에 부산하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AI 칩에서 독주하는 엔비디아조차 미래를 장담 못 한다. 미국 AMD를 비롯, 아마존·구글 등이 엔비디아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칩 생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자동차·조선·방산·원전 등 산업군을 가진 것은 엄청난 자산이다. 문제는 취약한 인프라다. 에너지·용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도체 공장·데이터센터를 지을 수도, 운영할 수도 없다. 올 3분기 ‘깜짝 성장’을 했다지만, 고작 1.2%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이 평가한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27위에 그친다. 특히 노동 분야 경쟁력은 후진국 수준이다.

전방위적인 구조개혁이 필수다. 기업의 창의력과 경쟁력을 극대화할 규제 혁파, 노동·의료·연금 등 사회 전반의 혁신이 불가피하다. 낡은 슬로건에 집착하다간 또 변방국가로 추락할 뿐이다. 이재명 정부가 앞장서서 시장·기업에 친화적인 혁신으로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야 한다.

정치권은 이런 국가적 과제를 책임지긴커녕 발목을 잡고 있다. 건국과 산업·민주화의 압축 성공과 문화 강국을 가능하게 했던 성취의 역사가 정치의 실패로 위기에 처했다. 정치의 양극화에 저질화까지 겹쳤다. 최근 최민희 의원 딸 결혼식 파문은 상징적이다. 이런 세력이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려 한다.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직접 주권을 위임받았고 행정부와 사법부는 그 아래”라는 이 대통령의 3부(府) 서열 발언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법원 겁박까지 한결같이 심각한 퇴행이다.

연성독재 위험까지 뚜렷해졌다. 소수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고,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는 식의 억지와 타락도 이미 심각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황당한 비상계엄 선포는 국민이 즉각 저지할 수 있지만, 의석 수를 앞세운 입법 독재는 대응하기 쉽지 않다. 내년 6월 지방선거는 중요한 심판대다. 야당도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한 만큼 국민이 깨어 있는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안보·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중대한 기로에 처했다. 문화일보는 이런 도전 과제들 앞에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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