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전국부 차장
지난 10월 2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증인으로 등장했다. 이날 국감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명 씨의 일방적 주장이 이어졌다. 명 씨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오세훈 서울시장이 증인 앞에서 운 적이 있느냐’고 묻자, “송셰프(중식당 이름)에서 질질 짰다”고 했다. “(오 시장이) 여론조사와 관련해 반대급부를 제시했느냐”는 질문에는 “아파트 사준다고 했다. 오늘도 집사람이 아파트 키 받아오라고 그랬다”고 답했다. 증언 과정에서 짜증을 내거나 고성을 질러 민주당 소속인 신정훈 행안위원장이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중 특별시·광역시·도는 국정감사 대상이 되지만, ‘감사범위는 국가위임사무와 국가가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한다’고 엄격히 제한돼 있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오 시장의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이 서울시의 국가위임사무나 국가보조사업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해당 의혹은 지난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 시장이 명 씨로부터 미래한국연구소의 미공표 여론조사를 13차례 받았고, 이 과정에서 오 시장의 후원자인 사업가 김한정 씨가 미래한국연구소 실무자 강혜경 씨 계좌로 3300만 원을 대납했다는 게 골자다. 심지어 명 씨는 이날 이해식 민주당 의원 질의에 “3300만 원인지 얼마인지 모른다”고 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날 명 씨가 증인으로 나온 것은 국감을 무분별한 폭로와 정쟁의 무대로 활용한 것이란 의구심을 낳을 수밖에 없다.
또 국감에서 정책 관련 질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와 행정자치위원회 등에서 지난 8월 시정질문 등을 통해 민주당 시의원 여러 명이 집중 질의했던 이슈가 되풀이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강버스다. 10월 20일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감과 23일 행안위 국감에서 유사한 질의가 이어졌다. 이연희 의원과 천준호 의원이 국토위 국감에서 한강버스 안전성을 문제 삼았는데, 양부남 의원과 윤건영 의원도 행안위 국감에서 안전 우려를 제기했다.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국회가 지자체를 감사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원리와 취지에 맞는지부터 근본적으로 질문해봐야 한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의회는 연방정부 부처·기관을 감사하고, 청문회 등 형태로 장관이나 정부 기관 책임자를 소환해 질의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사는 연방의회가 아닌 주의회에서만 소환 대상이 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연방의회(Bundestag)는 주정부에 대해 직접 감사할 수 없고, 주의회(Landtag)의 역할이다. 한국의 시도지사에 해당하는 주총리에 대한 질문권도 주의회가 갖고 있다. 물론 한국은 미국이나 독일처럼 연방과 주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지방자치제가 올해로 벌써 30주년을 맞았고, 광역의회 정도 되면 역량도 상당히 성장한 게 사실이다. 언제까지 국회에서 지자체를 감사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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