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DJ는 첫 비서실장에 TK 기용

논공행상 바란 동교동계 차단

선거 참모는 열정, 국정은 실력

 

변호사 연수원 동기 대거 중용

집권 반년도 안 돼 각종 구설

尹 정부 몰락 반면교사 삼아야

4번째 도전 끝에 대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주류 진영의 두려움을 한 번에 떨쳐 버리는 인사를 단행한다. 김종필 전 총리와의 DJP 연합 자체가 독주를 막는 장치였지만 자신과 아무 인연이 없고 출신 성분·성향이 정반대인 김중권 비서실장을 임명한 것이다. TK 출신인 김 실장은 DJ와 모든 면에서 반대편에 서 있었다. 경북 울진 출신에 판사와 민정당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실장은 정치·지역적으로 DJ와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논공행상을 바라던 동교동계와 호남 출신은 울분을 토했다. 고생은 누가 하고 과실은 누가 따먹느냐는 것이다. DJ와 함께 사선을 넘어온 측근 그룹들은 반발했지만, 권력의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다. 이헌재, 임창렬 등 경제 관료 출신의 기용도 주류 측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인선으로 소수·호남 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주류 진영의 협조를 얻었다. 오랜 정치 경험이 있는 DJ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선거 참모는 열정을 가지고 리더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지만, 국정을 운영하는 참모는 국가를 위해 리더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의미다. 욕망이 엔진과 같다면 브레이크는 헌법과 제도이다. 선거를 도운 참모들이 열정은 넘치겠지만, 자칫 브레이크 없이 독주하다 보면 결국 정권의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멸’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임기가 계속됐다면 사법 리스크 때문에 중도에 추락했을 것이다. 천운 같은 기회를 잡아 온갖 사법 문제에도 대통령이 됐다면 성공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길이다. 그러면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 지켜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도 여느 대통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DJ 모델보단 ‘측근 중용’이라는 패배의 공식을 따랐다.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이들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들을 국회의원, 정부, 선관위, 대사 등의 요직에 전면 배치했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은 수석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비서관 모두 자신의 변호사 출신들로 포진했다.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법제처장,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주유엔 대사,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연수원 동기인 오광수 전 민정수석은 이미 낙마한 상태다.

국회에도 박균택 의원 등 5명이나 변호인 출신이 포진해 온갖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 줄이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미 ‘이재명의 사람’으로 찍힌 이들에게 이 대통령의 당선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 대통령의 부동산 멘토로 성남시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이다. 10·15 부동산 정책을 주도해 놓고 유튜브에 출연해서는 “집값 떨어지면 사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집값이 오를 때 팔고 갭 투자로 큰 수익을 봤다. 논란이 되자 직을 버리고 집을 택했다.

공직선거법 사건의 변호사이자 연수원 동기인 이찬진 금감원장은 강남에 아파트 2채를 가지고 있다가 문제가 되자 팔겠다고 했다. 자녀에게 증여하겠다고 말을 바꾸더니 결국 팔겠다고 부동산에 내놨는데 시세보다 4억 원이나 높았다. 시세를 내리자마자 3시간 만에 팔렸다는데 의문이 여전하다. 공익 소송에서 성공 보수로 400억 원 가까이 받은 것이나 아파트 동대표를 둘러싼 소송전도 논란거리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욕망’이 가득한 측근들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측근인 김현지 제1부속실장의 문제는 정권 내내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국정감사에 나가라고 했는데도 결국 증인 출석이 불발된 것은 의혹만 더 키운다.

이들 측근이 정말 이 대통령을 위한다면 자리를 사양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들의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한 자리에서 “이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은 김현지 실장이 유일하다”면서 마치 김 실장을 옹호하는 듯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통령실 안에 제대로 쓴소리를 하는 참모가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권이 왜 무너졌는지 반면교사가 되지 않고 있다.

이현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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