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희의 ‘차이나 스캔’

 

“집에 있으면 눈치”… ‘일하는 것처럼’ 가짜 사무실로

회사처럼 책상 놓고, 휴게공간도… 삼삼오오 취·창업 준비

청년 실업률 ‘10% 후반’ … 물리학 석사가 고교 청소부 되기도

3일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한 가짜 회사 사무실에서 중국 청년들이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3일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한 가짜 회사 사무실에서 중국 청년들이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베이징=글·사진 박세희 특파원

3일 오전 9시, 베이징(北京) 이좡(亦庄)경제기술개발구. 기자가 도착한 빌딩 2층 사무실에는 이미 10여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형 모니터 앞에서 뭔가를 타이핑하거나,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며 마우스를 조작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스타트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 사무실 같아 보이지만 이곳의 정체는 정식 회사가 아닌 ‘가짜 회사’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가짜 출근 회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돈을 받고 다니는 직장이 아니라 돈을 내고 출근해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 회사의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하루에 약 44위안(약 8800원)을 받고 회사처럼 꾸며진 사무실 공간을 제공한다. 일주일 이용권의 가격은 314위안, 한 달 이용권의 가격은 1272위안으로 월정액으로 이용하는 고객들이 다수다. 구직자나 소규모 창업자, 프리랜서 등이 주요 고객으로 지난해부터 중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 등장했다.

올해 2월 문을 연 이곳 사무실의 내부는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다. 여느 일반 회사와 다를 바 없이 책상들이 일렬로 배치돼 있었고, 커피포트와 다과가 구비된 휴게 공간, 소형 회의실이 마련돼 있었다. 실제 회의라도 하는 듯 몇몇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눴다. 워드 작업을 하던 리(李)모(25) 씨는 “취업을 준비 중이다. 집에만 있으면 가족들 보기에도 조금 부끄럽고 자칫 게을러질 수가 있어서 월정액 회원카드를 끊고 거의 매일 여기에 나와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징 징펑센터에 설치된 가짜 회사 팝업 스토어를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는 모습.  웨이보 캡처
난징 징펑센터에 설치된 가짜 회사 팝업 스토어를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는 모습. 웨이보 캡처

◇학생 제외하고 25세 미만으로 기준 낮춰도…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고공행진= 이 같은 가짜 회사가 유행하는 것은 대학을 나오고 석사, 박사를 해도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없는 중국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 때문이다. 9월 중국의 도시 지역 청년(16∼24세) 실업률은 17.7%를 기록했다. 8월(18.9%)보다 1.2%포인트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10%대 후반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찾은 베이징의 한 채용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장(張)모 씨는 “올해 대학을 졸업한 학생 수가 사상 최대다. 경쟁자가 너무 많다. 열심히 하고는 있으나 더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및 취업 시즌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웃지 못할 채용 사례가 SNS 등을 통해 확산한다. 지난해 9월엔 물리학 석사를 수료한 24세 청년이 쑤저우(蘇州)의 한 고등학교에 청소부로 채용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최근 수년 동안 메이퇀(美團) 등 음식 배달 플랫폼의 배달 기사와 디디추싱(滴滴出行)과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의 운전기사 수는 빠르게 증가해 현재 12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AI 등 신기술 직종에선 ‘인재 구인난’…‘채용 양극화’ 극심= 이처럼 일반 직종에선 고학력 일자리가 줄어들어 구직난이 이어지는 반면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 등 신기술 직종에선 구인난이 극심하다. 중국의 온라인 채용 플랫폼 자오핀(招聘)에 따르면 올해 2월 알고리즘 엔지니어와 머신러닝 전문가의 채용 공고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6.8%, 40.1% 증가했다. 리창(李强) 자오핀 부사장은 “여러 부문에 걸쳐 AI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AI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구인·구직 및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 등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직군 중 하나는 AI다. AI 알고리즘 엔지니어들의 평균 연봉은 50만 위안, AI 엔지니어들의 평균 연봉은 45만 위안가량이다. 도시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이 약 12만 위안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액수다.

중국의 AI 인재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데 반해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인재난은 더욱 심해질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앤컴퍼니는 중국의 AI 인재 수요가 2030년까지 현재 100만 명에서 600만 명으로 약 6배로 증가할 것이며, 그에 비해 공급은 약 200만 명 수준에 그쳐 약 400만 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오핀도 보고서에서 올해 1분기 AI 분야 인재 수요가 공급을 3대 1로 앞지르면서 AI 인재 부족 현상이 심화됐다고 짚었다.

박세희 특파원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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