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인공지능(AI) 제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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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스트레스와 감정 억압이 만든 병, 젊은 세대·외국인에서도 증가

사상성격검사(SPQ)로 분석…과민한 행동·비관적 사고·정서적 고립 공통 패턴 확인

화병 환자, 일반 우울증과 다른 ‘정신적 지문’ 지녀

감정 억압→신체화→분노 폭발 단계로 진행되는 악화 메커니즘 제시

맞춤형 심리치료 방향 제안…“충동성 낮추고 사고·정서 공감 높여야”

부산=이승륜 기자

한국 고유의 질병으로 여겨졌던 ‘화병(Hwabyung)’의 정신적·신체적 특징이 부산과 서울의 대학 공동 연구팀에 의해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그동안 문화적 상징으로만 인식되던 화병이 실제 의학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생기고 악화되는지를 밝힌 연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채한 교수 연구팀은 경희대 김종우 교수팀, 경성대 이수진 교수팀과 함께 화병의 임상적 특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바이오피지코소셜 메디슨(BioPsychoSocial Medicine)’에 게재했다고 4일 밝혔다. 이 학술지는 세계적 출판사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가 발행하는 국제 저널로, 사회과학 인용색인(SSCI)에 등재돼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화병은 오랜 스트레스와 감정 억압으로 인해 몸속에 열이 쌓이며, 분노·불면·우울 등 정신 증상과 함께 홍조·가슴 답답함·호흡곤란 같은 신체 증상을 동반한다. 예전에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한(恨)’의 정서에서 비롯된 특수한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 환자에게도 늘어나고 있어 객관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팀은 화병 환자 118명을 대상으로 ‘사상성격검사(SPQ)’를 실시해 행동·사고·감정 반응의 특징을 분석했다. SPQ는 행동 태도(SPQ-B), 사고 방식(SPQ-C), 감정 반응(SPQ-E) 세 항목으로 구성된 성격검사다. 분석 결과 화병 환자에게서 ▲행동이 과민하고 충동적인 특징(SPQ-B 높음) ▲사고가 경직되고 비관적인 성향(SPQ-C 낮음) ▲감정이 고립되고 취약한 특성(SPQ-E 낮음)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런 심리 패턴은 화병 환자의 심리 증상 26%, 신체 증상 14%를 설명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화병은 감정을 억누르는 단계에서 시작해 가슴 답답함 같은 신체 증상을 거쳐, 마지막에는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가 폭발하는 단계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민한 행동을 줄이고(SPQ-B 낮춤), 사고의 유연성과 감정 공감을 높이는(SPQ-C·E 높임) 방식의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화병이 단순한 ‘한국의 감정병’이 아니라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정신신체질환(psychosomatic disorder)임을 국제적으로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화병의 과학적 이해가 확립되면 외국인과 젊은 세대의 환자 증가에도 대응할 수 있고, 맞춤형 진단과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채 교수는 “화병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정신적 패턴을 찾아냈다”며 “이 결과를 통해 우울증 등과 쉽게 구별할 수 있고, 개인 성향에 맞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승륜 기자
이승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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