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
민주당의 재판소원 당론 추진
헌법과 사법체계 흔들 4심제
정의 멀어지고 有權無罪 조장
위헌법률 제청권 크게 확대한
獨의 추상적 규범통제도 외면
헌법소원 제도 개선으로 가능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재판소원’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려고 하면서 헌법과 사법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여당은 “국민의 기본권을 폭넓게 보장하기 위한 개혁”이라지만, 그 ‘4심제’가 누구를 위하여, 어떤 목적으로 추진되는지 상식적인 국민치고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자신들의 위상이 대법원보다 높아질 절호의 기회로 여겨 표정 관리에 들어간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면서도 헌법재판은 독일식 헌재를 두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은 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권을 행사하는 사법심사제를 채택해 권력구조와 사법체계가 일체성을 지닌다. 반면, 우리는 대통령제 아래서 의원내각제 국가인 독일의 헌재 제도를 이식한 왜곡된 구조다. 이러한 체계적 부정합 속에서 독일의 재판소원만 선택적으로 도입하려는 것은 문제가 크다.
특히, 독일 헌재의 재판소원을 언급하면서 독일이 추상적 규범통제를 함께 운영한다는 사실에 침묵하는 것은 여당과 헌재의 직무유기이고,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국민 기망이다. 독일은 연방정부, 주정부, 연방의회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법률의 위헌성을 다툴 수 있는 추상적 규범통제를 인정한다. 독일뿐 아니라 헌법재판 기관이 따로 있는 국가는 대개 추상적 규범통제를 허용한다. 그러나 재판소원은 그렇지 않다.
현실적 문제도 심각하다. 지금도 헌재가 단순한 각하 결정을 내리는 데만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숱하다. 그런데 상고심 확정판결마다 ‘재판소원’을 허용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리 독일식 모델을 본뜬다고 해도, 재판 효력정지 가처분이 가능해지면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는 더욱 지연되고, ‘정의는 멀고, 권력은 가까운’ 구조가 고착될 것이다. 그리되면 헌재는 국민의 권리구제 기관이 아니라, 권력자들과 로펌의 로비가 집중되는 또 하나의 ‘그들만의 황금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더 근본적으로는 재판소원의 위헌성이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제2항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못 박았다. 헌재가 법원의 재판을 심사하는 것은 이 규정과 정면 충돌한다. 헌재의 관장 사항을 규정한 헌법 제111조 제1항이 재판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봐야 한다. 재판소원을 예정했다면 개헌 때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았을 리 없다. 정말 헌재와 여당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원한다면, ‘방탄용’ 재판소원이 아닌 국민이 직접 위헌적 입법에 대해 추상적 규범통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헌법소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도 가능하다. 재판소원이 도입된다면 추상적 규범통제를 함께 운영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국민발안 추상적 규범통제도 헌법 제111조의 체계와 긴장 관계에 있고, 대의민주주의 원칙과의 조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하고, 대의기관에 대한 보충적 통제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은 충분하다. 헌법상의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은 법률로 얼마든지 추상적 규범통제를 도입할 여지를 보여준다.
재판소원은 헌법 제101조, 제111조와 직접 충돌해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만, 국민발안 추상적 규범통제는 헌법 제111조 제1항의 체계와 긴장 관계는 있으나 직접 충돌하진 않는다. 입법부의 권한을 일부 제약하나 법률 자체를 무효화하는 게 아니라, 위헌 여부를 심사받는 것이므로 침해 정도가 경미하다. 무엇보다 기존 헌법소원 제도의 확대로 볼 여지가 있어 현행 헌법질서와 정합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이미 잘못 설계된 헌법 체계 속에서 재판소원만 선택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는 체계적 부정합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여당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개혁’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자신들의 권한 확대가 아니라, 국민의 헌법적 권한을 확장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헌재도 ‘돈 되는 것만 골라 하면서 폼도 잡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의 필요성을 여당에 설득해야 한다. 야당 또한 적극 나서서 이를 쟁점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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