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 ‘국가문화유산 등록’ 대통령 사저 5곳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역사성 인정… 국가가 사저 보호
일부 개방돼 기념관·전시관으로
대통령 생활상·유품 보관돼 의미
김대중 ‘동교동 자택’ 5번째 눈앞
55차례 가택연금·납치사건 거쳐
2009년 8월 타계 때까지 머물러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는 집이지만, 정부에 의해 국가적 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이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거주해 온 가옥, 즉 사저(私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대통령과 가족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라기보다, 수많은 정치적 만남과 결단이 이뤄졌던 역사적 공간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곳에서 정치적 동지들과 만나 미래를 도모하거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을 가다듬기도 했다. 대통령 퇴임 후에도 사용된 사저는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과 건재를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됐다. 선거철만 되면 입에 오르내리는 ‘사저 정치’라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사저가 가진 독특한 위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부는 역대 대통령 사저를 국가 유산으로 보호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됐다. 등록이 확정되면 전 대통령 가옥 중 국가 유산으로 보호받는 곳은 총 다섯 곳으로 늘어난다. 역대 대통령 가옥에 담긴 역사와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짚어본다.
서울 마포구 신촌로6길에 위치한 김 전 대통령의 가옥. ‘동교동 자택’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이 오롯이 담긴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 이곳에 입주해 미국 망명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2009년 8월 타계할 때까지 머물렀다. 건물은 대통령 퇴임에 대비해 한 차례 공사를 거쳐 현재는 사저동과 경호동으로 구성돼 있는 상태. 지난달 28일 열린 회의에서 이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로 한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는 그 안에 담긴 굴곡진 근현대사의 역사적·정치사적 의미에 주목했다.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투사였던 김 전 대통령을 상대로 55차례나 가택 연금 조치가 취해지고, 김 전 대통령 납치 사건에 등장하기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로 불린 동료·후배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민주화 실현을 위한 정치적 방안을 논의했다. 토지와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되면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역대 대통령 가옥 중 국가 유산으로 관리받는 곳은 앞서 네 곳이 더 있다. 일부는 개방돼 기념관 혹은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은 김 전 대통령 가옥처럼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일부 대통령의 가옥만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근현대 건축물이나 기록, 물품 중에 선정되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의 경우 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이어야 하며, 소유주나 지방자치단체의 등록 신청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도의 신청이 없거나 기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등록되지 않는다. 등록문화유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보다 뛰어난 역사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자택은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등록된 상태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 전 대통령의 가옥은 서울 종로구 이화장1길에 위치해 있다. ‘서울 이화장’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지정된 이곳은 본채인 기와집과 부속 건물인 조각정으로 이뤄져 있다. 1948년 당시 초대 내각을 구성했던 조각정은 현재 ‘이승만 기념관’이 돼 유품을 보관 중이다. 1945년 해방 직후 미국에서 귀국한 이 전 대통령은 실업가 권영일 등의 도움으로 이화장으로 옮겨와 1947년 11월부터 거주했다. 이곳에 살면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에 당선됐고, 이어 초대 대통령이 된 후에는 1948년 7월 경무대로 이사했다. 1960년 4월 27일 하야해 이화장으로 돌아온 그는 같은 해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 가옥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된 윤 전 대통령의 가옥은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62에 있다. 사적으로 등록된 정식 명칭은 ‘안국동 윤보선가’다. 조선 후기 양반 가옥의 전형성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서양문화를 접하며 만들어진 분위기,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종교적 색채 등이 혼재돼 있다. 고종 재위기인 1860년대에 건립된 자택은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18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년 독립과 근대교육을 위해 설립된 ‘조선교육협회’가 만들어진 곳이며, 1950년대 중반∼1970년대 초에는 야당 수뇌부의 회합장소였다. 안채에는 윤 전 대통령의 장남 윤상구 씨 가족이 4대째 터전을 지키고 있다.
서울 중구 다산로36가길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의 가옥은 한국 현대사의 명과 암이 모두 담긴 공간이다. 박 전 대통령이 육군 제7사단장이었던 1958년 매입해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기 전까지 3년간 거주했다. 5·16 군사정변을 계획하고 지휘한 곳도 이곳이다. 1930년대 후반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에서 신당동 문화주택지 개발로 조성한 가옥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가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주거사를 보여주는 자료로 인정받아 2008년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록됐다. 2015년 시민에게 개방돼 당시 사진과 언론 자료를 토대로 재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15길에 위치한 국가등록문화유산인 최 전 대통령 가옥은 그가 30여 년간 거주한 공간이다. 최 전 대통령이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1973년부터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한 1976년까지, 그리고 1980년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 머물렀다. 최 전 대통령이 직접 건축한 건물로 1970년대에 많이 보였던 지하 1층, 지상 2층의 복층 복열형 구조를 갖고 있다. 건물은 1970∼1980년대 정치·사회적 변동을 겪었던 시기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최 전 대통령의 청렴하고 검소했던 생활상과 유품들을 그대로 보존한 현장이다. 지난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인지현 기자, 박동미 기자,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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