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4주년 특집 - 베이비붐 1세대 ‘인생 2막’ 리포트

(4) 인구위기 속 은퇴자, ‘짐’ 아닌 ‘힘’으로

 

주판·타자기→ PC→ 스마트폰

전환기마다 혁신 체감한 세대

하드·소프트웨어 활용력 상당

새 기술 배우는 데도 ‘적극적’

 

고령자에 제공된 단순노동보다

“돈 적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를”

 

부모·자녀 동시 부양 ‘낀세대’

젊은층과 입장차 커 융합 과제

한국의 베이비붐 1세대(1955∼1963년생)는 세 차례의 전환기를 거친 변혁의 세대다. 산업화 시기 대체 불가능한 동력이었고,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또 디지털 혁명기에 경제 활동을 하며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몸소 겪어냈다. 압축적으로 성장한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세대인 것이다.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0.75명, 명백한 인구 위기 속 베이비붐 1세대들이 한국의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디지털 시니어’가 온다= 베이비붐 1세대가 이전 세대와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 중 하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경험이다. 주판에서 엑셀 스프레드시트로, 타자기에서 워드프로세서로 전환되는 과정을 직접 겪은 만큼 컴퓨터, 인터넷, 현재는 스마트폰까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도 상당하다.

실제 문화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17∼22일 베이비붐 1세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패널조사에서 ‘스마트폰, 인터넷 등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75.7%가 대체로 높거나 매우 높다고 답했다.(문화일보 10월 30일자 3면 참조) 연령대별로 구분해도 1950년대생인 66∼70세의 76.3%, 1960년대생인 62∼65세의 75.1%가 ‘높다’고 답하며 비슷한 수준의 답변을 보였다. 이들은 은퇴 후에도 유튜브, 온라인 뱅킹·결제, 메신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기술 혁신을 체감한 세대이다 보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도 보다 적극적이다. 한국에서 자영업을 하다 은퇴 후 태국 치앙마이에 거주하고 있다는 최성호(61)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국에 오가기 어려워지자 독학으로 영상 편집을 배웠다. 현재 구독자 2000여 명을 둔 어엿한 시니어 유튜버다. 코딩, 인공지능(AI) 등에 대한 관심도 높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생성형 AI 서비스를 인지하고 있는 전국 15∼6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산 생성형 AI 서비스 ‘뤼튼’을 인지하고 있는 60대는 50.5%에 달했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이러한 시니어들의 관심을 반영해 지난달 21일 ‘2025 서초 스마트시니어 정보기술(IT)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산업화·민주화 성공 경험으로 무장한 ‘액티브 시니어’= 사회를 직접 변화시켜 본 적 있는 ‘주도성’도 베이비붐 1세대의 강점이다. 베이비붐 1세대의 상당수는 이른바 ‘386세대’로,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다. 이를 통해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인 X세대(1971∼1980년생)·밀레니얼세대(1981∼1990년생)·Z세대(1997∼2012년생)가 겪어보지 못했던 정치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미래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의 주장과 이해를 적극 관철시켜본 경험이 있고, 사회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자신감이 있는 세대”라며 “이들의 은퇴로 고령사회 풍경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세대와의 융합이 과제로 꼽힌다. 변화를 시켰던 세대의 입장과 변화된 이후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 간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문화일보와 엠브레인퍼블릭의 패널 조사에서도 ‘세대 갈등이 심화하는 주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세대 간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차이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60.1%로 가장 많았다. 그 외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의 생각이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15.4%)’ ‘세대 간 대화와 교류의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11.7%)’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이들이 위로는 부모를 부양하고, 아래로는 자녀를 보살펴야 하는 ‘낀 세대’라는 점도 입장 차를 키우는 한 가지 요인으로 분석된다.

◇아르바이트 아닌 ‘의미바이트’ 일자리 필요= 인구절벽 위기 속 베이비붐 은퇴 세대의 경험을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 세대는 ‘베이비붐’이라는 말 그대로 수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부양 대상으로 이들을 바라봐선 여러 가지 사회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실제 저출산·고령화로 국민연금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베이비붐 1세대들은 기존 고령자들에게 제공되던 형태가 아닌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는 아르바이트 또는 환경미화·가사도우미와 같은 단순 근로 형태가 주를 이루지만, 경험을 살리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일자리를 정부 차원에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 이후 3년째 구직활동 중이라는 박모(65) 씨는 “공공근로도 알아봤지만, 일해본 다른 친구들이 ‘노인들 고독사하지 말고 바깥에 나오라고 주는 일자리’라 하더라”며 “많은 월급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적은 돈을 받더라도 내 경험과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전기 고령자(65∼75세)와 중기(75∼85세), 후기 고령자(85세 이상)의 세분화를 통해 연령·건강·경험 수준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서 교수는 “후기 고령자의 경우 정신적·육체적으로 급격히 쇠약해지며 돌봄이 필요하지만, 아직 신체적 활동이 가능한 전기 고령자와 중기 고령자의 경우 젊을 때의 경험과 노하우가 빛을 발할 수 있다”며 “이들이 사회적 봉사와 기여를 하면 정부가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아 기자, 최근영 기자
김현아
최근영

최근영 기자

편집국장석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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