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타결된 ‘연 200억 달러, 10년간 대미 투자’로 대표되는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은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선물한 모형 신라 금관이 큰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매혹적인 금관을 모방해 동(銅)으로 제작한 뒤 도금한 것으로, 금값만 1억8000여만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황금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맞춤형 선물로, 그의 마음을 산 데 톡톡히 역할을 한 것 같다.
큰 걱정을 쓸어내리고 안도하고 자찬하는 사이 미국에서 금관 선물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반발해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미 전역을 휩쓰는 분위기에 한국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ABC방송 ‘지미 키멀 라이브’ 진행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라 금관을 쓰고 있는 AI 합성 영상을 띄운 뒤 “수백만 명이 ‘노 킹스’ 시위를 하는 걸 보고 (한국 정부가 금관 선물을) 생각해낸 게 아닐까”라며 “(트럼프가) 이처럼 다루기 쉽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다”라고 했다. 한 케이블채널 토크쇼 진행자는 “황금 왕관! 우리 대통령을 위한 정말 사랑스럽고 사려 깊은 선물이네요”라고 비꼰 뒤 “우리는 지금 대통령이 왕 놀이에 빠지지 않게 하느라 애쓰고 있는데, 당신들이 ‘이 멋진 왕관 좀 써 보세요’라고 했다”며 “그냥 보통 나라들처럼 돈다발이나 건네라, 그렇게 분위기 망치지 말고”라고 힐난했다.
금관 선물이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통치를 자제하고 견제시키려는 미국 내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허영에 불을 지르고 기름을 부었다는 주장이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선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절박한 마음에서 한 선물은 더욱 그렇다. 더구나 자동차 관세 25%와 3500억 달러 선불 투자 요구를 낮추어야 할 한국 처지에선 미국 반(反)트럼프 진영까지 고려할 형편이 못 됐다.
여담 하나. 모형 금관을 만드느라 경주민속공예촌의 금속 유물 전문 공방 장인이 휴일 없이 하루 10시간씩, 총 20일간 작업했다. 주 52시간제 위반이 명백하다. 차제에 이 제도에 대한 유연한 개선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금관은 왕관이 아니라 장례용 부장품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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