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2026년도 예산안 대통령 시정연설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있었다. 이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은 바로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안”이라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의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의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 이제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 도약과 성장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 성장 동력이 불분명한 현 상황에서 AI를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시의성 있는 연설이다. 더욱이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가 우리나라에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직후에 나온 언급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연설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본격 AI 시대를 위해서는 ‘고속도로’ 구축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GPU 5만 장을 동시에 가동할 경우 약 1기가와트(GW)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최신형 원전 1기가 연간 생산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만약 26만 장의 GPU를 동시에 운용한다면 약 5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단기간에 소요된다.
이러한 전력 수요는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따라서 고리원전 2·3호기의 수명 연장을 검토하고,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병행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지로 보인다. 그러나 시정 연설에서는 이러한 전력 수급에 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쟁점은, 예산 규모의 적정성이다. 내년도 예산은 72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 이상 증가한 수치인데, 국가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사상 처음으로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재정 지표는 국가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경계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AI를 통해 미래를 말하면서, 또 다른 미래인 국가 재정 건전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가시적 성과보다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장기적인 안목이다.
한편, 이번 대통령 시정 연설에는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항의하는 표시였다. 2022년 당시 민주당이 대통령 시정연설에 불참했을 때,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이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들이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내로남불’이라 할 만하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추 전 원내대표가 구속되면 여권이 국민의힘을 상대로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짚어야 할 핵심은, 그러한 우려를 가질 만큼 사안이 중대했다면 애초에 계엄 주도 세력과 명확한 선을 그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당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한 상황에서, 위헌 정당 해산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국민 다수의 여론에 부응하는 정치적 결단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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