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대한민국을 총수와의 치맥 회동, 이른바 ‘깐부’로 흔들어놨던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서민들이 즐겨 찾는 치맥집에서 소맥 러브샷을 하고, 다른 테이블 시민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매장 밖 시민들에게 치킨과 감자튀김을 나눠줬다. 이는 격식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건’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평소 가죽점퍼를 즐겨 입고 대중과 소통하는 그의 파격적인 움직임을 쇼잉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젠슨 황이 살아온 험난한 삶의 과정을 보면 비방만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젠슨 황은 현재 약 1760억 달러(약 251조 원)의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이지만, 흙수저 출신이다. 부유한 배경이 아닌 오직 기술과 비전, 도전을 통해 오늘의 AI 제국을 건설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대만에서 태어나 9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젠슨 황은 스탠퍼드대 석사 후 AMD 등에서 받던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을 뿌리치고, 30세에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초기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미개척 분야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수차례 파산 위기를 겪었지만, GPU가 단순한 그래픽을 넘어 컴퓨팅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젠슨 황은 현재 엔비디아를 통해 순수한 혁신 동력으로 글로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미국엔 젠슨 황만 있는 게 아니다. 제프 베이조스 역시 월스트리트의 안정적 고액 연봉을 뒤로하고 창업한 아마존을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글로벌 회사로 키웠다. 미국은 실패 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도전에 대해 ‘경험’으로 인정하고 ‘혁신’으로 보상하는 문화가 견고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현실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젠슨 황과 같은 인재가 미국 빅테크 생태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유가, 역설적으로 한국의 우수 이공계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공계 인재들은 창업 실패 시 재기가 극도로 어렵고, 사회적 낙인이 큰 환경에 좌절한다. 벤처캐피털(VC) 생태계 역시 미국의 성장 중심 자본과는 달리, ‘담보’나 ‘안정성’을 먼저 따진다. 흑수저로는 창업 자체가 어렵다는 뜻이다.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기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하면서, 인재들은 자신의 역량이 가장 전폭적으로 인정받는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난다.
젠슨 황은 한국에 오기 직전 개발자행사(GTC)에서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없애고 상식을 되찾으며 혁신과 기업가 정신, 위험 감수를 보상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면 전 세계 기술 리더들이 미국을 찾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한국 정부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부는 혁신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신기술에 대한 ‘선(先)규제 후(後)허용’ 방식을 전면 개편하고, 실패 후 재도전이 용이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잃을 것 없는 도전’을 가장 강력한 혁신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젠슨 황의 성공은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시스템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미래는 ‘AI 칩’ 확보를 넘어, 제2의 젠슨 황을 한국 땅에서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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