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도수의 Deep Read - 재판소원,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당, 강성지지층 요구 따라 재판소원 추진… ‘4심제’ 되면 헌재가 대법원 위 군림
‘최고 사법기관’ 된 헌재가 권력에 줄 서면 독재… 국민은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
여의도 정가에서 ‘재판소원’이란 낯선 단어가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언뜻 들으면 국민 기본권을 한 단계 더 보장해주는 제도처럼 여겨진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우리 헌법이 세워놓은 삼권분립의 기둥이 무너지면서, 독재로 가는 문이 열릴 수 있다.
◇헌재의 정체성
재판소원이란 최종심인 대법원의 재판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판한다는 제도다. 이미 3심까지 끝난 재판을 헌재가 한 번 더 판단하는 것이다. 말을 어떻게 붙이든, 결국 ‘4심제’다. 지금까지 대법원과 헌재가 쌍두마차로 서로 이뤄온 사법부 내 견제와 균형을, 이제 헌재가 사법부의 정점이 되어 사법권을 한 줄로 세운다는 뜻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재판소원을 당론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법원이 헌법 아래에 존재하니,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이름으로 대법원 판결을 심사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헌법 논리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그 논리로 재판소원을 당론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재판소원 도입은 헌법의 더 근본적인 원칙, 즉 권력분립주의 자체를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헌법재판소가 문을 연 첫 10년간 헌법연구관으로 일했다. 그 시절의 필자는 대법원에 더해 헌재가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수없이 생각했다. ‘헌재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내면의 질문이었다. 결론은 분명했다. ‘사법권을 대법원과 헌재로 분립하는 게 곧 민주주의의 방파제’라는 것이었다.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를 입법-행정-사법이라는 삼권의 권력분립 위에 세웠다. 국회, 대통령, 법원 중 어떤 기관이 우두머리가 되어 다른 기관을 지배하며 독재로 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헌법정신은 특히 대통령이나 의회 다수파가 전횡하면서 독재를 하는 것을 막아내는 데 있다. 헌법이 사법권을 대법원과 헌재로 분립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독재로 가는 문
‘1987년 체제’ 이전, 즉 헌재 설립 전에는 대법원이 사법권을 독점했다. 당시 대법원은 국가권력이 인권을 침해할 때 국민이 제대로 재판받을 길을 막아버렸다. ‘소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행정재판을 거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배경에는 군사정권의 권력 행사를 국민이 다툴 수 없게 하겠다는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었다.
이런 대법원 권력의 오만은 헌재가 생기면서 반전됐다. 대법원과 헌재가 사법권을 분립하고 서로를 견제하면서 법의 공정성과 권력의 균형이 확보됐다. 대법원은 민·형사 분쟁과 행정 사건을 맡고, 헌재는 법률의 위헌 여부와 국가기관 간의 충돌을 다룬다. 이런 경쟁 속에서 헌재는 공법 사건 전부를 재판할 수 있다고 선언했고, 이에 자극받은 대법원도 행정재판의 외연을 넓혀 나갔다. 그 변혁은 실로 ‘무혈의 사법혁명’이었다. 두 기관의 경쟁과 견제가 국민의 인권 보장에 혁신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대법원과 헌재의 권력분립은 대통령 독재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대법원과 헌재가 분립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그 정점에 있는 사법부 수장을 손아귀에 쥐고 사법부 전체를 손쉽게 시녀로 만들 수 있다. 오늘날 대법원과 헌재는 서로 분리·독립돼 있기 때문에 독재권력이 둘 중 하나를 장악하더라도 다른 하나가 독재를 견제할 수 있다.
재판소원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헌재를 대법원 위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이는 사법권 분립이 무너지고 사법권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의미이다. 권력이 ‘최고 사법기관’ 헌재만 틀어쥐면 되는 상황에서 재판소원을 도입한다는 건 독재로 가는 문을 여는 셈이 된다.
◇호모 사케르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 등 역사 속의 독재자는 반드시 사법부를 장악했다. 법을 침묵시키면서 국정을 독단으로 처리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인권은 짓밟혔다. 독재자들은 그런 인권침해, 주권 박탈 행태를 눈감고 권력 편에 서줄 단 하나의 사법기관만이 필요했다.
대한민국은 독재의 출현을 극히 우려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국민은 독재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걸 절체절명의 과제로 뒀다. 1987년 체제의 헌법은 기존의 삼권분립과 함께 사법부 내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를 새로 뒀다. 헌재와 대법원의 분립은 독재 방지를 위한 특별 안전장치였다.
지금까지 사법 안전장치는 잘 작동했다. 그러나 재판소원은 그 안전장치를 해체할 것이다. 헌재가 대법원의 판결을 다시 심판하겠다고 하는 순간 국민은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선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이 되고 만다. 재판소원이 “피해 구제를 바라는 국민을 위한 제도”라는 정청래 대표의 말은 허울일 뿐이다. 국민은 네 번째 재판을 위해 시간과 돈을 더 써야 한다.
헌재는 이미 과부하 상태다. 심리 기간이 길게는 몇 년씩 지연되는 중이다. 이런 처지에서 재판소원으로 수만 건을 더 맡게 되면 그 하중으로 스스로 붕괴할 수도 있다. 재판소원 도입 논의에서 가장 위험한 건, 논의 방식 자체가 이미 독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법부의 기본 틀을 바꾸는 중차대한 사안을 두고 주권자 국민의 참여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민이 원하는 것
38년 전인 1987년 헌법재판소를 설립할 때 국민은 개헌 절차에서 합의에 참여했고, 국회의 토론 시간은 수백 시간을 넘어섰다. 반면 지금의 민주당은 4심제 도입이라는 중대한 헌법 사안을 강성 지지층이 좌지우지하는 당론의 이름으로 강행 중이다. 정 대표는 정당의 내부 논의로 충분하고, 국회에서는 다수결이면 충분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미 국민 위에 군림하며 독재의 길에 한 발 디딘 형국이다.
헌법의 주인은 국민이지 특정 정당이 아니다. 강성 당원에 휘둘리는 정당의 수뇌부는 더더욱 아니다. 헌법의 뼈대를 뒤트는 재판소원을 도입하면서 수뇌부가 정한 당론이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건 국민 존중의 태도가 아니다. 독재권력의 습속 중 하나는 ‘국민’이란 말을 습관처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국민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요구하고 있다. ‘권력을 나눠라. 그래야 국민이 산다.’ 대법원 위에 헌재를 군림시키려는 재판소원 도입의 끝에는 권력 독점과 법 위의 권력이 있고, 그 뒤에는 독재자가 버티고 있다. 사법부의 입이 하나로 모이게 되면 권력은 그 입에 재갈을 물릴 것이다. 법치주의가 무너진 자리에는 무법의 탈을 쓴 권력이 왕좌에 오를 것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한, 재판소원 입법 강행은 중단돼야 한다.
건국대 교수(헌법학), 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 용어 설명
‘4심제’는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네 번의 재판 절차를 거치게 하는 제도. 위헌 논란이 있으며, 헌재는 찬성, 대법원은 반대 입장을 표명.
‘호모 사케르’는 공동체나 법적 질서에서 추방되어 살해해도 처벌받지 않고 희생제물로도 바쳐질 수 없는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뜻. 고대 로마법에서 유래돼 아감벤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 개념.
■ 세줄 요약
헌재의 정체성: 헌법재판소는 그간 대법원과의 경쟁과 상호견제로 국민 인권보장에 혁신을 이루는 ‘무혈의 사법혁명’을 수행. 하지만 재판소원은 4심제를 통해 헌재를 대법원 위에 군림시키겠다는 것. 이는 독재로 가는 문.
호모 사케르: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 등 역사 속 독재자는 반드시 사법부를 장악. 재판소원은 헌재와 대법원의 분립이라는 ‘독재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해체. 이때 국민은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선 ‘호모 사케르’로 전락.
국민이 원하는 것: 집권여당은 4심제 도입이라는 중대한 헌법 사안을 강성 지지층이 좌지우지하는 당론의 이름으로 강행 중. 재판소원 도입의 끝에는 권력 독점과 법 위의 권력이 있고, 그 뒤에는 독재자가 버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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