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기자의 여행 - 예년처럼… 단풍객 맞이하는 경북 청송 주왕산

 

주왕산 능선의 산불 흔적에도

울긋불긋 등산복 행락객 여전

단풍명소는 큰 피해 입지않아

 

기암 사이 탐방로 ‘최고 경치’

경사없이 산책하듯 갈수있어

절골계곡 들어가려면 예약을

 

탄산 품은 약수는 ‘가을에 딱’

그 물로 끓여낸 닭백숙 ‘인기’

짜글이·석쇠연탄구이도 훌륭

 

벼랑 위에 선 망미정·방호정

미술관 꽉 채운 ‘청량대운도’

인근 가 볼 만한 명소도 많아

경북 청송 주왕산에서 가장 압도적인 경관을 보여주는 용추폭포 일대의 모습. 폭포 앞에서 뒤돌아본 풍경이다. 거대한 바위틈이 흡사 석문의 형상이다. 다른 어떤 곳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고 독창적인 경관이다.
경북 청송 주왕산에서 가장 압도적인 경관을 보여주는 용추폭포 일대의 모습. 폭포 앞에서 뒤돌아본 풍경이다. 거대한 바위틈이 흡사 석문의 형상이다. 다른 어떤 곳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고 독창적인 경관이다.

청송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뜻밖이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곳곳에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상처가 깊고 완연한데도 개의치 않았다. 혹시나 가을 단풍시즌 관광객 유치에 타격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단풍 소식이 전해지면서 경북 청송의 주왕산으로 밀려드는 행락객은, 예년보다 많으면 많았지 줄지 않았다. 가을 단풍철을 앞두고 주왕산을 찾아간 건, 지난 봄 초대형 산불 이후 주왕산의 안부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그래서 ‘예년처럼 단풍산행을 다녀오시라’고 말할 요량이었는데, 이미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은 가을 행락객들이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주왕산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다들 신경 쓰지 않는데 새삼 ‘괜찮다’고 말하려니 뻘쭘할 수밖에…. 산불의 자취를 지나 주왕산으로 가면서 새삼스레 느낀 건 ‘당연하고 평범한 것의 아름다움’이었다. 과거에는 ‘밋밋하다’고 생각했을 풍경이 하나하나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불탄 잔해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불타서 죽은 것들이, 불타지 않고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운 셈이었다.

너구마을에서 월외탐방지원센터 쪽을 바라본 모습. 왼쪽의 숲은 초록인데, 오른쪽 숲의 나무는 불타서 숯이 됐다.
너구마을에서 월외탐방지원센터 쪽을 바라본 모습. 왼쪽의 숲은 초록인데, 오른쪽 숲의 나무는 불타서 숯이 됐다.

# 산불의 깊은 상처를 목격하다

서산∼영덕 고속도로 청송IC로 나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주왕산으로 향하는 길 양옆의 능선이 온통 시커멓게 말라붙어 있었다. 산불의 흔적이었다.

능선마다 소나무들이 숯이 돼 서 있었다. 불을 먹은 나무 밑동이 터지고 갈라졌다. 능선 너머로 다른 능선이, 그 너머로 또 다른 능선의 숲이 다 그랬다. 숫자와 지도로 가늠하는 산불피해는, 실제 두 눈으로 목격한 산불 면적의 체감과 사뭇 달랐다. 검게 불탄 산자락이 말 그대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 타서 숯이 된 나무들이 늘어선 능선을 바라보다가 산불이 맹렬하게 타올랐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했다. 산을 통째로 집어삼킨 불이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로 몰려다녔을 것이고, 불붙은 숲에서 날아온 불티가 온 천지를 가득 채웠을 것이었다.

산불의 기세에 겨우 몸만 피한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조마조마한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이튿날 아침이면 불 끄러 나갔던 소방대원들의 전언으로 ‘누구누구 집이 불탔다’는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 주민들에게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한밤중에 산불이 능선과 능선을 건너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산촌 마을 주민들의 산불 체험담은 다 비슷하게 끝났다. ‘그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다시 벌렁벌렁 뛴다’며 진저리를 쳤다.

산불의 화염은 청송읍 뒷산까지도 넘보았던 모양이었다. 청송읍에 들어서자 읍내 뒷산인 방광산의 정상 부근에 불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그나마 읍에는 그것 말고는 산불이 틈입한 흔적이 없다. 뒤로 방광산, 앞에는 용전천을 두고 있는, 말 그대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들어선 청송의 초가을 풍경은 이름처럼 푸르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청송읍의 천변 벼랑에 세워진 정자 망미정.
청송읍의 천변 벼랑에 세워진 정자 망미정.

# 새삼스러운 청송읍의 풍경

산불의 자취를 보고 와서 그런지 청송읍의 풍경이 새삼스러웠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찬찬히 봤다. 그런 곳 중 하나가 읍내 한복판의 소헌공원이다. 공원은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 심씨의 시호를 이름으로 삼았다.

1459년 청송 심씨인 소헌왕후의 본향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청송군은 도호부로 승격했다. 군(郡) 단위의 지위가 하루 아침에 도(道) 단위로 뛰어오른 것이었다. 갑오개혁 때 도로 군으로 돌아가기까지 청송은 자그마치 437년간 도호부의 지위를 누렸다. 공원 이름으로 쓴 소헌은, 그 시절의 영예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소헌공원에는 관아의 누각이었던 찬경루와 객사 운봉관이 복원돼 있다. ‘찬경(讚慶)’이란 누각의 이름은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 누각이 소헌왕후를 배출한 청송 심씨 가문의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들 안평대군이 어머니의 유훈을 받들기 위해 청송에 내려와 어머니의 시조묘가 있는 보광산을 바라보기 좋은 곳에 누각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누각은 16칸으로 지어졌는데, 세종의 8명 왕자가 2칸씩을 바친다는 의미를 담았다

세종 때 지어진 누각은 화재로 소실됐다가 1792년 다시 지었으며 이후로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다. 왕후의 시호를 현판에 걸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용전천의 물길을 내려다보는 2층 누각의 전체적인 인상이 단아하다.

찬경루 뒤편에는 운봉관이 있다. 찬경루와 함께 지어진 청송의 객사(客舍)다. 객사는 출장 중인 관리나 외국 사신이 묵는 공공숙박 공간이자 왕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공간이었다.

구한말에 이곳에서는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던 무렵에 청송 유생들이 모여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운봉관은 일제강점기에 별채가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소실된 부분은 2008년에 복원해 웅장한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

청송읍에는 용전천 물길을 건너는 다리 청송교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다가 물가의 벼랑 끝에 세워진 작은 정자를 보았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이다. 망미정(望美亭). ‘아름다움(美)을 본다(望)’는 뜻이다. 고종 때 청송군수였던 장승원이 기암의 자연 바위를 주춧돌로 삼아 지은 정자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데, 딱 그랬을 법한 자리다.

망미정 뒤편에는 ‘청송여인숙’이 있다. 정자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자리에 있어 정자와 풍류를 공유하는 듯하다. 말이 여인숙이지, 붉은 벽돌로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지어낸 펜션이다.

절집 대전사와 우뚝 솟은 주왕산 기암.
절집 대전사와 우뚝 솟은 주왕산 기암.

# 작년보다 낫다… 주왕산 가을 단풍

이제 주왕산으로 간다. 청송읍에서 주왕산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산불의 흔적을 봤다. 어떤 곳은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타죽은 나무들이 늘어선 숲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뭘 어쩔 수 있을 규모와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의 회복력에만 기대해야 할 뿐이었다. 이게 다 언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 섞인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주왕산도 산불 피해를 입었다. 천만다행으로 탐방로 구간 3분의 2는 무사하다. 주왕산의 탐방로는 크게 세 개 코스로 나뉘는데, 주왕산의 단풍 명소로 꼽히는 주봉 코스와 절골 코스는 산불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산행을 하거나 단풍을 즐기는 데는 아무 불편이 없다는 얘기다. 단풍이 채 물들기 전에 다녀온 터라 올해 단풍색이 어떤지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주왕산 국립공원사무소가 실시간으로 전해준 올가을 단풍 평가는 ‘작년보다 낫다’는 것이다.

피해를 입은 건 산행 기점인 대전사에서 장군봉에 올랐다가 금은광이를 거쳐 월외마을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월외 코스’다.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데다 낙석과 산사태 위험도 커서 탐방객 안전을 위해 코스 전 구간의 출입을 통제하는 중이다.

알싸한 탄산 약수로 삶아낸 ‘달기 백숙’으로 이름났던 달기 약수 주변도 산불을 피하지 못했다. 급하게나마 몇몇 상가 주인이 불이 지나간 자리에다 가건물을 들이는 중이었다. 뭐든 잃고 난 뒤에 그것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듯 주변의 산불 흔적은, 무사한 숲에 대한 고마움과 대견함으로 이어진다. 올가을 주왕산 단풍이 더 곱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주왕산과 청송의 곳곳을 귀한 책을 아껴 읽듯 차근차근 살피고 둘러보게 된 것도 다 산불 때문이었다.

청송의 지질명소 중의 한 곳인 병암 단애. 병풍 형상의 화강암 벼랑이 펼쳐진 곳이다.
청송의 지질명소 중의 한 곳인 병암 단애. 병풍 형상의 화강암 벼랑이 펼쳐진 곳이다.

# 단풍 보러 가는 순하디순한 길

주왕산 단풍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산행 들머리인 대전사에서 용추폭포와 절구폭포, 용연폭포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뫼 산(山)’ 자를 빼닮은 암봉인 기암(旗巖)과 바위벼랑이 마주 서서 협곡을 이루고 있는 주방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주왕산 계곡 단풍을 감상하겠다면 과거에 1, 2, 3폭포로 불렸던 세 개의 폭포를 다 보고 갔던 길로 되돌아 나오면 된다. 3폭포 위쪽인 금은광이와 장군봉은 산불피해와 낙석위험 등으로 탐방로가 닫혀 더 갈 수는 없다.

대전사에서 세 번째 폭포인 용연폭포까지 거리는 편도 3.5㎞ 남짓. 왕복 3시간쯤 소요된다. 이 코스를 추천하는 건 계곡과 단풍이 좋기도 하지만, 길이 순해 누구나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산행도 부담스럽다면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까지만 다녀와도 좋다. 용추폭포 주변이 주왕산을 통틀어 최고의 경치가 펼쳐지는 곳이라 거기만 보고와도 아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전사에서 용추폭포까지는 편도 2㎞가 조금 넘는다. 유모차를 끌거나 휠체어로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돼 있다. 경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길이라 내내 고른 숨으로 산책하듯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주방천 계곡의 좌우로 연화봉, 시루봉, 병풍바위, 급수대, 학소대로 이어지는 기암들이 늘어서 있고, 길은 그 사이로 이어진다. 쪼개진 바위틈이 문(門)처럼 보이는 협곡 안에 용추폭포가 있다.

폭포가 쏟아져 만든 소(沼) 주위는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기이하고 화려한 경관을 빚어낸다. 바위와 물과 나무가 시간과 합세해 만들어낸 풍경에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무협지 속 비현실적 공간 같기도 하고, 어부가 동굴 속에서 만난 무릉도원의 모습 같기도 하다.

주산지와 가까운 절골계곡도 가을 단풍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징검다리로 건너다니며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다. 절골분소에서 대문 다리까지 3.5㎞ 구간은 완만한 숲길이다. 탐방로도 잘 정비돼 있다. 왕복 3시간쯤 걸린다. 절골계곡은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이다. 우락부락한 암봉과 까마득한 벼랑으로 이뤄진 주왕계곡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절골계곡은 가을 탐방 기간(11월 14일까지) 중에는 탐방예약 구간으로 운영된다. 이 기간에는 하루 출입인원이 최대 1350명으로 제한돼 있다.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으로 주왕산국립공원 ‘절골∼가메봉 구간’ 탐방예약을 해야 한다.

# 닭불백숙에다 짜글이와 연탄구이

이번에는 청송의 먹거리 이야기. 달기약수 인근 상가가 산불피해를 크게 입긴 했지만, 약수는 무사하다. 약수터에는 기포를 머금은 탄산 약수가 변함없이 샘솟고 있다. 비릿한 쇳내 나는 톡 쏘는 맛의 약수는, 요즘처럼 쌀쌀한 가을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달기약수는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고향으로 돌아와 수로 공사를 하다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달기’라는 약수 이름은 바위틈에서 ‘꼬르륵’ 솟는 소리가 ‘달기’(‘닭이’의 사투리) 우는 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것이란 얘기가 있다. 보다 설득력 있는 지명유래가 약수터 주변의 옛 지명이 ‘달이 뜨는 곳’이라는 뜻의 ‘달기골’이어서 거기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달기약수는 아직 산불피해가 복구되지 않았지만, 청송에는 진보면의 신촌약수도 있다. 전국 어디든 약수터 주변 식당은 ‘약수로 끓인 닭백숙’이 대표메뉴. 닭백숙이라면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끓여 3∼4인분으로 파는 게 보통인데, 신촌약수 주변 식당들은 과거 닭백숙과는 좀 다른 행태로 요리를 낸다.

퍽퍽한 닭가슴살을 다져서 고추장 양념을 발라 석쇠에 구워서 ‘닭불고기’로 내고, 날개와 닭봉은 ‘닭구이’로 내며, 닭다리는 녹두를 넣고 백숙으로 끓여서 내준다. 이렇게 세 가지 요리를 세트메뉴로 구성해 ‘닭불백숙’이란 이름으로 1인분씩 판다. 1인당 1만7000원. 닭불고기와 닭구이, 닭백숙을 고루 맛볼 수 있으니 만족도가 높다.

음식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청송에는 닭백숙 말고는 이렇다 할 음식이 없다. 주왕산으로 드는 도로변에 관광객을 겨냥한 고깃집이 있고, 산 아래 대전사로 드는 길에는 산채정식을 내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어떤 곳이든 기본기는 하지만, 딱 집어서 맛집이라 할 만한 곳은 없다. 청송에서 딱 한 곳 추천할 만한 식당이 읍내의 ‘사과밭에 돈돈’이다. 돼지고기를 양념해 자작하게 끓여내는 짜글이 메뉴도 인기고, 닭과 돼지, 오징어 등을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구워내는 연탄구이도 훌륭하다. 현지 주민이 ‘뭐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며 추천해준 곳이었다. 식당 문을 나서면서 든 생각은 ‘이런 식당을 어떻게 그렇게 덤덤하게 알려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림 가로 폭이 45.6m에 달하는 대작 청량대운도.
그림 가로 폭이 45.6m에 달하는 대작 청량대운도.

# 극장 스크린보다 큰 수묵화 한 장

청송이라면 주왕산만 떠올리지만,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지질명소 중에는 주왕계곡이나 기암 등 이름난 것들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경관 명소도 즐비하다.

부남면 구천리의 병암 단애, 신성계곡의 정자 방호정 일대, 안덕면 고와리의 백석탄과 지소리의 만안자암 단애….

병암 단애는 하천 변에 높이 140m의 까마득한 벼랑이 말 그대로 병풍처럼 서 있는 곳. 방호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천변에 지은 빼어난 정자다. 천변의 지형과 정자의 경관이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곳이다.

백석탄은 개울 바닥의 회백색 바위가 오랜 풍화와 침식을 거치는 동안 깎이고 파여서 빚어낸 근사한 절경이다. 명소를 전자지도 위에다 찍어두고 차로 물길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찾아가 보자.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세손이 1880년에 이쪽으로 옮겨와서 지었다는 송소고택이 있는 덕천마을도, 청송에 간다면 둘러봐야 할 곳이다. 전통한옥과 돌담길로 꾸민 마을을 산책해도 좋겠고 고택 부근 운치 있는 카페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신촌약수 부근에는 청송군이 지은 야송미술관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한국화가 야송 이원좌 화백의 그림을 전시한 미술관이다.

체육관 크기의 2층짜리 전시장에 걸린 그림은 딱 한 장. 그걸로 미술관이 꽉 찬다. 전지 400장을 붙여 만든 그림 ‘청량대운도’다. 높이 6.3m에 길이가 45.6m다. 기네스 인증을 받았다는 서울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의 세계 최대 크기 스크린의 길이가 34m인데, 그림이 이것보다 10m 이상 더 길다.

그 앞에 서면 그림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2층에도 감상 공간을 만든 이유다. 굵은 붓질로 그려낸 거대한 산줄기와 운해, 그리고 청정한 소나무의 기운이 장엄하다. 청량산을 그렸다지만, 산의 힘찬 기운이야 주왕산도 다를 게 없다.

■ 산속 마을의 안부를 묻다

주왕산에서 산불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 ‘월외코스’ 일대다. 탐방지원센터가 잿더미가 됐다. 월외코스를 따라 들어가면 너구동이 있다. 너구마을로 들어서는 계곡 길 한쪽은 초록의 숲인데, 다른 쪽은 나무들이 새카맣게 탔다. 다행히 너구마을은 산불피해가 크지 않았다. 너구마을의 행정지명은 월외2리. 월외(月外), ‘달의 바깥’이다. ‘달이 가진 음기(陰氣)가 불이 가진 양기(陽氣)를 눌렀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박경일 전임기자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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