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민노총이 건강 보호를 내세워 오전 0∼5시 배송을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했다. 새벽 배송은 밤 10∼12시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상품을 받는 온라인 쇼핑 서비스다. 2015년 ‘강남 엄마’들의 신선식품 배달로 시작해 지금은 보편적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맞벌이 부부 등 이용 고객이 1500만 명을 웃돌고 시장 규모가 15조 원에 이른다. 배송기사들은 현행법상 고용 계약을 통해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다. 업무위탁 계약을 통해 수수료를 받는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로 분류된다.
배송기사들은 새벽 배송 금지에 93%가 반대한다. 건당 택배비가 주간 배송보다 1.5∼2배 많기 때문이다. ‘교통 혼잡이 적고 엘리베이터 이용 편리’ ‘낮 시간 개인적 활용’ 등도 새벽 배송을 선호하는 이유다. 시장 점유율은 쿠팡 70%, 컬리 23%, SSG 5% 순이다. 이 때문에 새벽 배송 금지는 민노총의 ‘쿠팡 길들이기’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쿠팡 임직원은 6만7980명으로, 1년 동안 1만1000명이나 늘었다. 현대차(6만8810명)를 제치고 삼성전자(12만867명)에 이어 2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알짜 노조다.
이런 쿠팡 노조가 2023년 95% 찬성으로 민노총을 탈퇴했다. 민노총 산하 택배노조는 경기동부연합의 아성이다. 정치 투쟁을 선도하는 최강성 집단이다. 쿠팡 노조도 탈퇴 이유로 ‘과도한 정치 활동 요구’를 들었다. 조합원들이 밤에 일하고 낮에 쉬어야 하는데 대낮 정치 행사 참여를 다그치니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민노총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른 셈이다. 여기에 새벽 배송은 쿠팡·컬리 등 민간 플랫폼들이 자체 물류망을 구축해 상품 보관-분류-배송까지 전 과정을 맡고 있다. 민노총의 주력인 CJ대한통운 같은 전통적 택배업체들이 끼어들기 어려운 시장이다. 새벽 배송이 잘될수록 민노총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문제는, 더 큰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 물류 업체인 미국 아마존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도입하면서 1만4000명을 감원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마존이 2033년까지 60만 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폭로했다. 건강 보호만 외치다 AI와 로봇, 자율주행 등 신기술에 밀려 배송기사라는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지 모를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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