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이란 말 따위│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동아시아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잡혀간 딸

무능한 정부에 경찰도 돈에 굴복

결국 어머니가 딸 흔적 찾아나서

 

2년만에 10명 체포·사살했지만

시민이 공권력 대신해 복수한것

정의찾던 어머니 끝내 살해당해

사회적 참사앞 ‘국가 부재’ 섬뜩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멕시코 북부의 산페르난도에서 상점 주인으로 일하던 미리암 로드리게스가 마약 카르텔에 의해 딸 카렌이 납치된 후 직접 추적에 나선 실화를 그렸다.  게티이미지뱅크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멕시코 북부의 산페르난도에서 상점 주인으로 일하던 미리암 로드리게스가 마약 카르텔에 의해 딸 카렌이 납치된 후 직접 추적에 나선 실화를 그렸다. 게티이미지뱅크

2014년 1월, 멕시코 북부의 국경도시 산페르난도에서 한 여성은 한 통의 전화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끔찍한 일이 생겼어.” 멕시코에서 가장 폭력적인 집단으로 꼽히는 세타스 카르텔이 딸 카렌을 납치한 것이다. 정부는 무능했고 경찰은 카르텔의 돈에 굴복했다. 미리암 로드리게스는 결국 스스로 딸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평범한 상점 주인이었던 그녀의 사적 분투는 국가가 기능을 멈춘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르포르타주의 서두다.

뉴욕타임스 멕시코 지국장을 지낸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저자는 4년에 걸친 현장 취재와 수백 건의 인터뷰를 통해 한 가족의 비극을 사회구조의 해부도로 확장한다. 그가 포착한 멕시코의 폭력은 범죄조직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 그 자체의 부패, 공권력의 매수, 정치와 자본의 유착이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이다.

멕시코에서 마약 카르텔의 성장은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1929년부터 2000년까지 70년 넘게 집권한 제도혁명당의 비호 속에서 성장했다. ‘걸프 카르텔’은 미국의 금주법 시기였던 1920년대에 등장해 한 세기 가까이 멕시코의 밀수산업을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 세관 공무원은 물론 제도혁명당 정치인들까지 깊숙이 얽혀 있었다. 카르텔은 이들과 뇌물 및 이권을 주고받으며 안정적인 공급망과 사실상의 면책특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제도혁명당의 일당독재가 무너지며 사회적 혼란은 커졌다. 권력의 공백이 생겼고, 그 틈을 마약 카르텔이 파고들었다. 국가가 조직범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순간이었다. 2006년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군 투입은 폭력을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확대시켰다. 불법 거래를 단속한다며 시작된 제재는 도리어 자국민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납치, 협박, 살인, 인신매매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시민들은 범죄조직과 국가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받게 됐다.

멕시코 카르텔을 추적한 미리암 로드리게스의 생전 모습.  페이스북 캡처
멕시코 카르텔을 추적한 미리암 로드리게스의 생전 모습. 페이스북 캡처

미리암의 딸 카렌이 납치된 2014년, 산페르난도는 이미 ‘국가의 외곽’이었다. 경찰은 카르텔과 거래했고, 사법기관은 피해자 가족의 신고조차 받지 않았다. 미리암은 SNS를 통해 용의자를 추적하고, 익명의 제보를 모으며 사실상 ‘비공식 수사망’을 구축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10명의 범인을 특정했고, 이 중 절반은 체포, 나머지는 해병대 작전 중 사살됐다. 하지만 이는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국가의 실패를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한 시민이 공권력을 대신해야 하는 사회, 그것이 멕시코의 현실이다.

미리암의 행보는 단순히 복수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연대를 택했다. 딸 카렌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녀는 다른 실종 피해자 가족들과 손을 잡는다. 경찰에 신고조차 거절당한 이들과 함께 단체를 만들고,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며, 암매장지의 유해를 찾아 나선다. 미리암은 한 개인의 상처를 사회적 행동으로 전환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뿐”이라며 사람들에게 사건을 기록하고 고소장을 제출하도록 한다. 기록은 이러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자 선언이다. 행정 문서는 복잡한 형식과 순환 논리로 피해자의 언어를 지워버렸다. 정부 문서의 문체 자체가 진실을 감추는 장치였다는 저자의 통찰은 인상적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기록하고 증거를 모아야만 사건이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정의는 ‘사적 노동’이 된다.

그러나 연대는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2017년 어머니의 날, 미리암은 마지막 용의자를 신고한 직후 자택 앞에서 총격을 받아 숨졌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정의를 찾으려다, 같은 폭력에 스러진 것이다.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이를 이렇게 서술한다. “근본적으로 망가진 제도하에서 올바른 당위와 대의명분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반면 그의 어머니 미리암은 불의에 맞섰고, 정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유도했고, 패러다임을 바뀌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살해당했다.”

이 책은 멕시코의 이야기지만, 우리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 사건이 잇따랐거니와 사회적 참사 앞에서 ‘국가의 부재’나 ‘국가의 무능’ 문제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미리암의 이야기는 경고처럼 다가온다. 공권력의 무능은 개인의 용기와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 책은 그 현실을 잊지 말라는, 피로 쓴 증언이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로는 이 세계의 폭력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진짜 공포는 폭력이 아니라 그것을 외면하는 제도와 사회의 냉담함이라고. 424쪽, 2만 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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