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화관이 있는 고등동물을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에 비유한다. 동물의 몸에 있는 입부터 항문까지의 길이 마치 도넛에 뚫은 구멍 같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특히 위상수학의 관점에서 보면 소화관은 ‘속’이 아닌 ‘겉’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소화관은 몸속에 있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이 소화관을 대표하는 것이 창자인데 그래서인지 이를 가리키는 이름도 다양하다.
사실 창자란 말도 매우 특이해서 한자로는 ‘腸子’라고 쓰니 ‘장자’라고 읽어야 하나 중국식 발음을 따르다 보니 조금 달라졌다. 고유어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애’인데 이것만 따로 쓰는 일은 드물고 보통 ‘애가 타다’나 ‘애가 끓다’와 같이 쓴다. 온갖 정성과 큰 힘을 들일 때의 ‘애쓰다’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애’가 물고기에 쓰일 때는 창자가 아니라 간을 가리킨다. 특히 홍어의 애는 특별한 맛으로 사랑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 다른 고유어로는 ‘배알’의 준말인 ‘밸’이 있다. 방언 조사를 해 보면 북녘에서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지만 남녘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애’와 마찬가지로 ‘밸’도 관용적인 표현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밸을 뽑다’는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밸이 꼴리다’는 아니꼬워서 비위에 거슬린다는 뜻이고 ‘밸을 삭이다’는 그런 마음을 억누른다는 뜻이다.
우리 몸의 중요한 기관인 만큼 애와 밸은 흔히 쓰이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자어도 아닌 중국어 창자에 밀려나 잘 쓰이지 않게 된 것이 흥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용 표현에서라도 흔적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기는 하다. 그러나 애나 밸이 창자를 몰아낼 만큼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밸이 꼴리거나 밸을 삭일 일도 아니다. 창자도 이제는 우리말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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