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체면도 염치도 불구하고 두 번 이상 러브콜을 날렸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뒤에 버티고 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무서워 더블 제재를 자초하고 말았다. 트럼프의 기교와 애교는 물론 외교도 평양 정권에는 우이독경이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뒤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자 워싱턴은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일 마치 준비된 선수처럼 “북한의 사이버 범죄 등 다양한 불법 공작을 통해 발생한 자금을 세탁하는 데 관여한 북한 국적 개인 8명, 북한 소재 기관 2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바로 전날인 3일에는 미 국무부가 “유엔을 통해 북한산 자원의 불법 환적에 관여한 제3국 선박을 제재하겠다”고 했다.

미 재무부가 특별제재대상(SND) 목록에 올린 개인은 장국철·허종선 등 8명이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장·허는 퍼스트크레디트은행(북한 제일신용은행)을 통해 530만 달러(약 76억6700만 원) 상당의 암호화폐 등 자금관리를 도운 북한 은행가들”이라며 “이 자금 일부는 과거 미국을 표적으로 삼은 북한 랜섬웨어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선양(瀋陽)·단둥(丹東) 등지에서 정보기술(IT) 인력 파견 조직을 운영하는 ‘조선만경대 컴퓨터기술회사’(KMCTC)와 대표 우영수도 제재 대상이 됐다. 이들이 파견하는 IT 인력들은 불법 수익의 출처를 숨기기 위해 중국 국적자를 금융거래 대리인으로 활용해 왔다.

알려진 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 참석에 앞서 지난달 27일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김정은과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꽤 큰 사안”이라고 김정은이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힌트를 줬다. 2019년 하노이 회담 때는 물론 최근에도 북한이 내건 제재 해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배려와 시혜의 의미였다. 그러나 북한은 엉뚱하게 미사일 도발로 반응하면서 회동 제안에 귀를 틀어막았다. 게다가 미국과 접촉 전선 사령관 격인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로 내보내며 어깃장을 놨다. 애초에 미·북 접촉은 고려 사항이 아니라 “노(No)”의 ‘결정사항’이었던 것이다.

이번 연쇄 제재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도 비치지만, 북한 비핵화는 도쿄(東京) 미·일 정상회담 때도 재확인됐다. 대화든 제재든, 최종 목표는 북핵 폐기임을 이미 천명했다. 물 건너간 미·북 대화를 두고 내년 3월쯤 화해 무드가 다시 찾아올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오지만, 김정은이 러시아의 전쟁 특수를 외면하고 미국에 시선을 돌리는 일은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더블플레이를 하기에 김정은의 운신 폭은 너무 좁고 북한의 힘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악재만이 기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풍계리 3호 갱도에서 7차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휴전선의 장벽 쌓기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쯤에서 우리 정부도 한반도 상황에 대해 전반적인 재고를 해야 한다. 지난달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대집단체조에서 보듯이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대집단체조는 북한판 최초의 문화대혁명이다. 뭔가 김정은식 독자 사회주의가 시작될 것이다. 우리 정부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선언은 김정은에게 경고가 될 것이며, 이런 식의 카드를 가끔 꺼내 위기로 내닫는 북한 정권을 ‘교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북정책이며 남북관계 발전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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